‘트레스킬링 옐로’ ‘지(Z)그릴’ ‘뒤집힌 제니’ ‘모리셔스 우체국’ ‘1센트 마젠타’ ‘페니 블랙’…. 세계 우표 수집가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이름들이다. 한 장에 수억, 수십억원 주고도 갖기 어려운 이 진귀한 우표의 값어치 순위가 다시 매겨질 전망이다.
최근 미국 경매회사 소더비가 1986년 이후 일반에 공개된 바 없는 ‘1센트 마젠타’를 오는 6월 17일 뉴욕에서 열리는 경매에 내놓을 것이라고 밝혀서다.
‘1센트 마젠타’는 우표 경매 사상 세 차례나 최고가 신기록을 경신했던 ‘우표계의 모나리자’ 가운데 하나로서 낙찰가가 무려 1000만~20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소더비가 지난 2월 14일(현지시간) 예상했다.
지금까지 우표 경매 최고가 기록은 1996년 230만 달러에 익명의 수집가에게 팔린 ‘트레스킬링 옐로’라는 게 정설이다. 1855년 스웨덴에서 발행된 3실링 액면의 이 우표는 실수로 녹색 대신 황색으로 인쇄됐는데, 전 세계에 단 한 장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이 1868년 벤저민 프랭클린의 얼굴을 담아 발행한 ‘지그릴’ 우표도 단 두 장뿐인 희귀본으로, 월가의 채권왕 빌 그로스가 297만 달러에 구입한 4장짜리 ‘뒤집힌 제니’ 우표와 이를 맞교환해 화제가 된 바 있다.
‘1센트 마젠타’를 정확히 표현한다면 ‘영국령 가이아나에서 발행한 1센트 액면의 진홍색(마젠타) 바탕 검정색 인쇄를 한 임시 우표’ 정도일 듯하다. 1856년 가이아나 우체국장은 폭풍으로 본국인 영국에서 우표가 공급되지 않자 현지에서 소량으로 임시 우표 세 종류를 발행해서 사용했다.
신문에 사용할 ‘1센트 마젠타’와 편지에 사용할 ‘4센트 마젠타’ 및 ‘4센트 블루’였다. 인쇄를 맡은 지역 신문 인쇄업자가 디자인한 것은 매우 조악했다.
진홍색 종이에 검은 잉크로 범선과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주어라’(Damus Petimus Que Vicissim)는 식민지 모토를 라틴어로 인쇄한 것이었다.
우체국장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위조에 대한 안전장치로 우표에 우체국 직원의 서명을 넣어 판매하게 되었다. 우표에 들어가 있는 E.D.W.라는 서명은 우체국 직원의 이니셜이다. 이 서명이 들어간 임시 우표가 얼마나 발행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우표의 가치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78년 전설적 우표수집가 필립 폰 페라리 백작이 150파운드에 이를 사들이면서였다.
1856년 4월 4일 데메라라 소인이 찍힌 이 1센트 마젠타 우표는 1873년 버넌 본이라는 12살 스코틀랜드 소년이 삼촌의 편지에서 뜯어내다가 한쪽 귀가 찢겨나가자 네 귀를 모두 잘라 8각형이 돼버렸다.
페라리의 우표 수집품은 그의 유언에 따라 베를린 박물관에 기증됐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수중에 들어갔고, 1센트 마젠타는 1922년 유명한 수집가 아서 하인드에게 넘어갔다.
당시 3만5000달러에 이르는 낙찰가는 우표 경매 사상 최고액이었다. 하인드는 그 무렵 발견된 또 하나의 1센트 마젠타를 조용히 사들여서 없애버렸다는 소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소문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1센트 마젠타의 마지막 주인은 1980년 세 번째 최고가 경매 기록인 93만5000 달러에 이를 사들인 존 E 듀폰이다. 듀폰 창업주의 고손자인 그는 1996년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데이비드 슐츠를 총기로 살해해 3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0년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사망으로 은행 금고에서 30년 넘게 잠들어 있던 1센트 마젠타가 다시 경매시장에 나오게 된 것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수집품에서 유일하게 빠져 있는 영국 우표라는 1센트 마젠타가 우표 경매 사상 또 하나의 신기록을 세우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