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윤동주, 밤하늘 별을 노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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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1. 11. 23. |
첨부파일 | 첨부파일없음 |
![]()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의 '서시'의 시작이다. 윤동주는 증조부 대에 북간도로 이주하여 1917년 12월 명동촌(明東村)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린성 옌지현 룽징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은진중학에 입학했다가 평양 숭실학교에 편입했지만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문익환과 함께 동맹 자퇴하고, 고향 광명 중학으로 전학하여 훗날 국무총리를 지낸 정일권을 만난다.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1942년 일본 도쿄 立敎大學(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를 마친 후 교토 同志社大學(도시샤대학) 문학부에 편입했다. 이듬해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 직전 고종사촌 형인 송몽규와 더불어 조선인 유학생을 모아놓고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2년형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복역 중 1945년 2월 옥사했다. 그의 나이 만27세였다. 생체실험의 의혹을 남긴 채 유해는 고향 용정 동산에 안장되었다. 몽규도 23일 뒤 동주의 뒤를 따른다. 은진중학교 시절 송몽규, 문익환 등과 함께 습작 활동을 했다. 미션 스쿨인 숭실학교가 신사참 배 문제로 곤경에 처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정지용, 백석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을 탐독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에는 최현배, 이양하 등에 시를 배우고 릴케(Rainer Maria Rilke), 프란시스 잠(Francis Jammes), 프루스트(Marcel Proust) 문학을 공부했다. 일본 유학 중에는 원고지에 쓴 시를 연희전문 시절 절친 강처중에게 보낸다 유작(遺作)시는 1948년 2월 3주기 추도식에 맞춰 강처중이 보관하고 있던 유고와 후배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필사본 등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 詩>를 출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정지용의 서문과 친구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담은 강처중의 발문을 붙인 시집이다. 정지용은 월북작가로, 강처중은 좌익인사로 한때 지워졌다. 한 여성을 사랑했다. 홀로 간직한 채 고민하고 희망하면서 끝내 고백하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을 또 다른 고향에 대한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시에서 하늘과 별은 주로 그리움과 꿈의 대상이다. 자기 삶에 대한 외로움이요 슬픔이다. 그의 외로운 삶과 시편 들은 오히려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1941.11.20. 季節(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색여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來日(내일)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靑春(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追憶(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憧憬(동경)과 별 하나에 詩(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후략) 동주는 연희전문 4학년 때(1941. 11. 5.) 부끄러운 현실을 담은 '별 헤는 밤'을 육필 원고로 남겼다. 1968년 유작 <서시>가 새겨진 <윤동주 시비>가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건립되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는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1985년 윤동주문학상이 제정되고, 1990년 8월 15일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우정사업본부는 2001년 밀레니엄시리즈와 2014년 추억의 인물로 같은 사진의 윤동주 시인과 서시의 육필 원고를 우표 디자인으로 담았다. ------------------ [참고문헌] 위키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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