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지막 날. 올림픽 폐막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간, 우리나라 온 국민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던 감격의 드라마가 연출 되고 있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일본선수와 선두를 유지하며 각축을 벌이던 황영조(당시22세) 선수가 급경사 난코스인 몬주익 언덕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발휘하여 2, 3위로 뒤딸아오던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 와 독일 선수와의 차이를 크게 벌리며 스타디움에 들어섰고, 양팔을 벌이며 골인지 점을 향하는 모습과 1위(2시간 13분 23초)로 골인 후 트랙에 쓰러져진 모습은 감동 그 이상이었다.
이런 감동의 실화 덕분에 '몬주익의 영웅' 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 황영조 선수의 일화는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인 1936년 베르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한 이후 56년만이지만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로는 마라톤 첫 금메달인 것이다. 당시 올림픽 참가국은 169개국 선수 9356명이였고 경기 종목은 32개 종목이었다. 한국선수단 규모는 선수 247명 임원 97명이였고 21개 종목에 참여 금메달 1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12개로 세계7위 를 달성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인정받은 대회였다.
몬주익 경기장 앞 커다란 바위에 황영조 선수가 뛰는 형상이 부각된 조형물이 설 치되어 있고 그 주변에는 황영조 선수의 발 도장이 새겨져 있다. 강원도 삼척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삼척 출신의 황영조 선수의 인간승리의 과정과 우승의 감격을 기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꿈을 심어주기 위하여 조성된 황영조 기념공원이 있다. 또 당시 체신부(현 우정사업본부)에서는 민 족정신의 고양을 위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마라톤 제패를 기리는 기념우표 2종을 발행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올림픽백과, 위키백과, 감성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