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北海道)는 면적이 83,428km2로, 남한의 83%에 이르는 큰 섬이다. 북해의 아이슬란드와 비슷한 크기다. 섬의 북쪽에는 러시아의 사할린섬과 쿠릴열도가, 남쪽으로는 혼슈(本州)와 쓰가루(津軽)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16세기 이후 일본인들이 정착하기 전까지, 이곳은 원주민인 아이누족이 거주하는 외국 영토였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 병합되어 홋카이도라 했다. 1都 1道 2府 43県의 행정구역 중 유일한 ‘道’다.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인 삿포로(札幌)는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약 196만 명이 거주하며, 홋카이도 인구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삿포로’라는 이름은 아이누어로 건조하고 넓은 땅에서 유래한 것으로, 드넓은 땅에 홋카이도 개척의 거점으로 건설된 계획도시다.
삿포로는 연간 1,5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다. 라일락 축제, 맥주 축제, 신궁 축제, 오텀 페스티벌, 국화 축제, 눈 축제 등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삿포로역 – 오도리공원 – 스스키노로 이어지는 도심 축을 중심으로 지하철 3개 노선과 순환 노면 전차가 운행된다. 1972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세 지점을 연결하는 지하도가 건설되어 추운 겨울에도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중심부에는 TV 타워와 시계탑이 있는 오도리공원(大通公園)이 있고, 북쪽으로는 홋카이도 도청, 삿포로 시청, 삿포로역, 홋카이도대학 등 관공서와 오피스가가, 남쪽으로는 다누키코지상점가와 스스키노 번화가를 중심으로 상업시설과 환락가가 펼쳐진다. 이곳은 나카지마공원(中島公園)과도 이어져 있다.
삿포로는 150년 남짓한 짧은 역사를 지닌 도시로, 역사 유적지는 많지 않다. 그중 일본 제국시대 5대 제국대학 중 하나인 홋카이도대학(전신: 札幌農學校)은 올해 개교 150주년을 맞아 대학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전시 코너 중 한 곳에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한 초대 학장 William S. Clark(1826~1886)의 전시실도 마련되었다. 클라크 학장의 동상은 교내뿐 아니라 시내 여러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시계탑 앞 광장을 지나, 동서로 늘어선 다누키코지(狸小路) 상점가를 걷는다. 간판과 가게 안 조명이 은은하게 거리를 물들이고, 느릿한 발걸음 속에서도 활기가 넘친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삿포로 TV 타워 앞 도심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붉은빛이 서서히 밤의 현란한 조명빛으로 바뀐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버스킹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그 속에 빠져보기도 한다.
다음날은 삿포로를 조금 벗어나 오타루(小樽) 운하를 걷는다. 오타루는 삿포로의 외항으로, 메이지 시대 석탄항으로 개발되면서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가 개통된 항만 도시다. 석탄뿐 아니라 다양한 생산품 수출항으로 기업과 금융기관이 몰려있어, 1920년대에는 삿포로를 능가하는 인구와 물류 중심지였다. 그 시절을 말하는 듯, 잔잔한 운하 수면 위로 오래된 붉은 벽돌 창고들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비치는 가을 햇살이 금빛으로 흔들린다.
오타루 서쪽으로 샤코탄반도(積丹半島) 끝자락에 가무이미사키(神威岬)가 있다. 이곳으로 향하는 길에는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물결이 바위에 거세게 부딪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람에 흩날리며 부딪히는 갈대 소리가 계절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은 삿포로도 마찬가지였다. 가을 문턱에 선 삿포로의 푸른 하늘 아래 한결 맑고 서늘한 공기가 사뭇 다름을 느낀다. 산자락에서는 서서히 단풍이 물들어 내려오고, 도심의 가로수도 금빛과 붉은빛을 함께 담아내며 낙엽으로 뒹군다. 도요히라강(豊平江)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이 살짝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바람 속에는 지난여름의 열기와 가을의 서늘함이 함께 섞여 있다. 여행자의 눈에는, 삿포로의 가을이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와 자연이 맞닿아 만들어낸 느린 호흡처럼 느껴진다.
체신부는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을 기념하여 2종의 우표를 발행했다. 이 대회에 우리나라는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에 5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반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대회에서는 13개 종목에 64명의 선수가 참가해, 금메달 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를 수상하여 큰 성과를 거둔 것과는 크게 비교된다.
참고문헌 : 위키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