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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경기전과 조선 태조 어진
등록일 2022. 2. 14.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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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2-1. 경기전과 조선 태조 어진
 
조선 왕실 어진 우표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선대(先代)가 살았던 곳으로 전주 이(李)씨의 본향이다. 조선시대에 전주를 ‘풍패지향(豐沛之鄕)’이라 했다. 풍패란 건국자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漢(한)나라를 건립한 高祖(고조) 劉邦(유방)의 고향이 풍패인데서 유래했다. 전주부성의 남문인 풍남문(豊南門, 보물 제308호)은 ‘풍패’의 ‘풍’자를 따서 남문을 풍남문이라 했고, 서문은 ‘패’자를 따서 패서문이라 했다. 전주객사(보물 제583호)는 풍패관이라 하여 객사 중앙에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1410년(태종 10)에 한양을 비롯해 태조의 본향 전주, 고구려의 수도 평양, 신라의 수도 경주, 고려의 수도 개성, 태조의 출생지 영흥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어용전(御容殿)'을 세웠다. 1442년(세종 24)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숭전(永崇殿)'으로 이름을 고쳤다. '경기(慶基)'라는 이름은 조선의 국성(國姓)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이므로 '경사스러움(慶)이 터 잡은(基) 곳'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경기전(사적 제339호, 전주시 풍남동)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4년(광해군 6)에 중건되었다. 1676년(숙종 2)에는 진전 동편 전주사고 자리에 별전이 건립되었다. 1919년 일제에 의해 경기전 서편 부속건물이 철거되고 일본인 소학교가 건립되었으며, 1937년 별전이 철거되었다. 1997년에는 경기전 서편부속건물 자리에 있던 중앙초등학교가 이전되고, 2004년 부속건물이 복원되었다.
  
    어진이란 왕의 초상화다. 조선시대 어진은 국왕의 생존 시 그린 도사(圖寫), 왕이 승하하신 후 그린 추사(追寫), 기존의 어진을 본 떠 그린 모사(模寫)가 있다. 장서각에 있는 『선원전수개등록(璿源殿修改謄錄)』(1934)에 의하면 선원전(璿源殿)에 태조, 세조, 숙종, 영조,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 어진, 그리고 추존된 임금 원종과 익종 어진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이들 어진이 소실되고, 1954년, 부산에 옮겨져 있던 12점 정도의 어진을 비롯해 어필 등 궁중유물 대다수가 화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 태조 어진〉(국보 제317호)은 220×151cm 크기로 태조 말년 평상시 집무복인 익선관과 청룡포 차림에 백옥대와 흑화를 신은 전신상이다. 비단에 채색하여 1410년(태종 10)에 봉안되었다. 많게는 26점이 있었다고 한다. 전란과 화마를 겪으며 남은 것은 경기전의 것이 유일하다. 임진왜란 때는 조성왕조실록과 함께 정읍 내장산으로 이안하여 수호했다. 이후 아산객사, 강화도를 거쳐 묘향산 보현사 별전에 봉안하여 화를 면했다. 1767년(영조 43) 정해년 전주 대화재 때는 향교 명륜당, 전주성이 전란에 휩싸인 동학농민혁명 때는 위봉산성으로 이안하여 화를 면했다. 이 어진은 시간이 지나며 원본이 너무 낡아 1872년(고종 9)에 박기준, 조중묵 등이 모사했다. 낡은 원본은 물에 씻어내고 백자 항아리에 담아 경기전 북계상(北階上)에 묻었다. 모사본은 2008년 보존 처리 후 경기전 내의 어진박물관(2010년 개관)에 보관되어 있다. 경기전 진전(眞殿)에 있는 어진은 1999년 권오창 화백의 모사본이다.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 어진이 더욱 가치를 지니는 것은, 조선 왕조 건국자의 유일한 어진으로 태조에서 철종 대까지 25대 임금 중 어진이 3점(태조, 영조, 철종)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도 철종은 1/3쯤 불에 타서 온전하게 남아 있는 어진은 태조와 영조 어진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초의 어진 제작방법을 담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어진과 함께 경기전 건물도 남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지방의 진전이다. 이와 함께 어진 이안 때 쓰였던 신연(神輦), 향정자(香亭子), 채여(彩輿), 흑장궤(黑長櫃) 등 의장물도 유일한 것이다.
 
    전주 완산구 태조로를 사이에 두고 유교의 상징인 경기전, 가톨릭교의 상징인 전동성당이 마주 보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2월 7일 경기전에 봉안된 조선 태조 어진 우표를 발행하고, 3월 30일에는 한국의 옛 건축(성당) 중 하나로 전동성당을 우표에 담아 발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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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어진박물관 홈페이지(www.eojin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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