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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등록일 2020.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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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밀턴 관련 우표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1922~1950)는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얼 쇼(William Earl Shaw, 1890~1967)의 외아들로 일제강점기 때인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아버지 얼 쇼가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면서 해밀턴 쇼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웨슬리언대학을 졸업하였다. 쇼는 1943년 미국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하였다. 제대 후 1947년 미 군정청 소속 민간인 교관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조선해양경비대사관학교(현 해군사관학교)에서 함정운용술을 가르치며 한국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했다. 교관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박사 과정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태어난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해밀턴 쇼는 젊은 부인과 두 아들을 처가에 맡긴 채 다시 군에 입대하여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어와 한국 지리에 밝은 쇼 대위는 미국 극동군사령관 맥아더장군(Douglas MacArthur, 1880~1964)의 최측근 보좌관인 해군 정보장교로 임명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뒤 미 해병대 5연대에 배속되어 서울탈환작전에 참전하게 된다. 9월 22일 아침, 적 후방 정찰을 위해 녹번리(현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던 쇼 대위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인민군 매복조의 기습공격을 받고 29살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그 일주일 후인 9월 28일 서울은 인민군으로부터 3개월 만에 완전히 탈환되었다.

   서울 은평 평화공원(역촌역 4번 출구) 입구 평화의 소녀상을 지나면 가슴에 훈장을 단 멋진 군복 차림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동상이 있다. 동상 옆에는 1956년 연세대학교 백낙준 총장 등이 세운 ‘故美國海軍大尉徐煒廉二世戰死紀念碑’(고 미국 해군대위 서위렴이세 전사 기념비)라 새겨진 우리 전통양식의 기념비도 있다. ‘徐煒廉’은 그의 아버지 얼 쇼 선교사의 한국 이름이다.
   기념비에는 1950년 6월 “아버지, 어머니! 지금 한국인들은 전쟁 중에 자유를 지키려고 분투하고 있는데, 만약 제가 이를 도우려 흔쾌히 가지 않고 전쟁 후 평화 시에 선교사로 돌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제 양심상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 일입니다.”라는 쇼 대위의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글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해군 경비함 함장 이성호 중령(제5대 해군참모총장)에게 “나도 한국에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입니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고 있겠어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해도 늦지 않아요.”라고 말한 글이 새겨져 있다.

   아버지 얼 쇼는 평양 광성학교, 대전감리교신학원에서 가르쳤고, 어머니(Adeline Hamilton Shaw, 1895~1971)도 숭덕여학교에서 교육에 헌신했다.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을 마친 해밀턴 쇼의 부인(Juanita Robinson Shaw)은 1956년 두 아들을 데리고 서울에 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며 세브란스병원 의료사회사업실을 개설하고 활동했다. 아들 로빈슨(William Robinson Shaw)은 훌브라이트(Fulbright)장학재단에서 한국대학생의 교류에 힘쓴 하버드대학교 한국사 박사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초빙교수로 재직하였고, 며느리 캐럴(Carole Cameron Shaw)도 한국 근대사 연구가로 한국대사관 기록보관소에서 근무했다. 쇼 대위의 손녀 줄리는 1990~1991년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장교로 근무했다.

   해밀턴 쇼는 부모님과 함께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제2묘역 라-6)에 고이 잠들어 있다.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해군사관학교 학술정보원(도서관) 로비에는 쇼 대위의 흉상이 있으며, 대전감리교신학원(현 목원대학교)에 윌리엄 해밀턴 쇼 기념교회(1957년)와 흉상(2018년)을 건립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에게 대한민국정부는 충무무공훈장, 미국정부는 은성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2015년 국가보훈처는 ‘9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

   우정사업본부에서는 2015년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 영웅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들의 호국정신을 기억하고자 10종의 호국영웅 우표를 발행하며,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를 10인의 호국영웅 중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1965년 6‧25전쟁 발발 15주년을 맞아 참전국과의 우의를 기리기 위한 5종의 우표 중 하나로 태극기, UN기, 미국 성조기와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이 담긴 우표를 6월 25일 발행하였다. 9월 28일에는 서울탈환일을 기념하여 당시 우리 해병이 중앙청 하늘 높이 태극기를 올리는 모습을 그린 9‧28수도탈환15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였다.
  
      9.28 서울수복일을 앞두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碧眼(벽안)의 한국인, 윌리엄 해밀턴 쇼의 애틋한 한국 사랑을 생각해본다. “참으로, 당신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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