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최초의 여왕 메리1세
헨리 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튜더(Mary Tudor). 국 최초의 여왕으로 군림하였던 그녀는 재위기간 동안 로마 가톨릭 복고정책으로 개신교와 성공회를 탄압하여 훗날 ‘블러디 메리(Bloody Mary; 피의 메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바람둥이였던 아버지 헨리 8세 때문에 영국 왕위 계승권자로서 수많은 위기와 좌절을 겪었다. 부왕의 사망 이후 영국 국왕의 지위를 얻으려는 노섬벌랜드 공작 더들리의 책략으로 한때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귀족과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메리는 스스로 여왕으로의 즉위를 선언하며 사실상 잉글랜드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 1세는 부왕이 이룩한 종교개혁의 결과를 전면 부정하고 로마 가톨릭의 복귀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성공회 성직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을 차례대로 체포하여 처형시켰으며 300여명의 반대파를 화형에 처하는 등 3년 동안 공포정치를 폈다. 에스파냐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메리는 반대를 무릅쓰고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의 아들이자 아스투리아스 공인 펠리페와 결혼 하였고 이로 인해 프랑스 에스파냐 간 전쟁에 휘말려 프랑스에 패하여 대륙에 가지고 있던 마지막 영토인 칼레를 영원히 상실하게 되었다. 헨리 8세의 생전, 계모들로부터 그녀가 받았던 박해의 감정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남아있었고 그녀가 결혼한 이후부터 자신의 후계를 잇기 위한 강박관념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메리 1세는 5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재위한 후, 난소 종양에 걸려 1558년 11월 17일에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