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며,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하여 조국의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 - 이준(李儁, 1859년 1월 21일 ~ 1907년 8월 22일(음력 7월 14일))
이준열사 그분은 누구인가?
이준(李儁) 호는 일성(一醒) 구한말의 검사이자 외교관이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되어 외교활동 중 사망하였다.
1904년 12월에 일제가 친일파의 일진회를 조직하여 활동을 시작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한 단체로 공진회(共進會)를 조직하여 그 회장의 책임을 맡고 반(反) 일진회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한국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이준을 6개월의 유배형(流配刑)
으로 황해도 철도에 귀양 보내기도 하였다.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세계 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종의 밀사로
파견되었다. 신문기자들과 언론들은 세 밀사의 활동에 협조적이었던데 비하여, 열강의
대표들은 냉담하였다. 이준은 이에 분개하여 통탄하다가 헤이그에서 순국하였다.
헤이그 특사 사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 평화 회의에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알리고,
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한 을사조약 체결에 의한 외교권 박탈과 국권 상실을 알리고자
고종은 헤이그에 이준 · 이위종 · 이상설 3인을 특사로 비밀리에 파견했다.
고종황제의 신임장과 밀서를 지니고 두 달여에 걸친 여정 끝에 러시아를 거쳐 1907년 6월
25일경 헤이그에 도착한 이준 등 세 밀사는 평화회의에 한국대표로서 공식으로 참석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대표와 영국대표가 방해하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공개 연설과 언론 보도를 하는 등 국제사회에 우리의 상황을 알리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이위종은 프랑스어로 「한국을 위한 호소」 라는 강연을 7월 9일
각국 신문 기자단의 국제 협회에서 행하여 국제여론을 환기시켰지만 일제의 방해로 외국
열강들은 조선의 외침을 외면하였다.
이 사건의 빌미로 고종을 1907년 7월20일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