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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라트비아의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프랑스 소설의 거장 스탕달&&프랑스화가 마네
등록일 2010. 1. 23.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1월 23일

라트비아의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

라트비아의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 내용시작 구 소련영화의 황금기를 구축한 라트비아 출신의 그는 영화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으로 꼽는 두 개의 극단적인 대조 쇼트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몽타주이론을 실천한 연출가 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계 건축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건축을 공부였던 그는 러시아혁명 때 대중을 선동하는 무대미술가로서 활약하였다. 이후 영화로 폭을 넓힌 에이젠슈테인은 혁명 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계급투쟁과 민중의 혁명적인 전형을 스크린에 표현하려 노력하였다. 결국 영화사상 없어서는 안 될 역작 '전함 포템킨 (Bronenosets Potemkin, 1925)'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905년 실패한 러시아혁명 2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제정 러시아시기 흑해 함대의 포템킨호에서 일어난 수병들의 선상 반란 을 주제로 만들어졌다. 몽타주기법을 적용하여 편집된 영상은 관객에게 뛰어난 현실감을 제공하였고, 보는 이들에게 감정의 고조를 넘어 극단적인 몰입감을 강요하는 가히 영화사에 혁명적인 영화였다. 영화를 대중 선동의 뛰어난 매체로 탈바꿈 시킨 에이젠슈테인은 이후 다양한 이론발표와 함께 소련영화의 황금기를 구축하며 영화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프랑스 소설의 거장 스탕달

프랑스 소설의 거장 스탕달 그르노블의 고등법원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스탕달은 부유한 환경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혁명정부가 설립한 그르노블중앙학원에 다녔던 스탕달은 이 시기 사회적 모순에 대한 반발심과 함께 종교에 대한 염증을 느꼈으며 이러한 그의 사상적 배경은 동시대 사회적 요구와 무관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는 평소 그의 관심분야였던 예술분야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하였고 그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1812년 귀국한 스탕달은 서평과 시사평론을 여러 곳의 잡지에 기고하는 등 본격적으로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였으며 낭만주의의 중심적인 인물로서 평가받기 시작하였다. 이무렵 스탕달은 불후의 명작 '적과 흑 (Le Rouge et le Noir, 1830)을 출판하였다. '적과 흑'은 스탕달 정치사상의 진면목이 잘 표현된 소설로서 계급관념을 통렬히 풍자한 최초의 사회 소설인 동시에 본격적 심리 소설로서 1830년대 반동기의 사회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외교관으로서 다시 해외로 출국한 스탕달은 몇 편의 걸작 소설을 더 남겼으며 1842년 귀국 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프랑스 화가 마네

프랑스 화가 마네 내용시작 서양의 근대 회화의 역사의 모두를 장식하는 화가의 한 사람인 마네. 그는 1860년대 후반, 파리, 바티뇰거리의 카페 '게르브와'에 모인 일단의 화가들을 이끌며 훗날 '인상파'로 불리는 화가 그룹의 중심적 존재였다. 화가로서 막 입문한 마네는 당시 주류였던 아카데믹 화풍에 반발하여 독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미술관을 돌며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자유스러운 화풍을 만들어 나갔던 마네는 1863년 낙선전(落選展)에 전시된 '풀밭 위의 점심 (Le Dejeuner sur l’herbe), 1865년 살롱 입선작 '올랭피아 (Olympia)'로 일약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이 두 작품으로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마네는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그를 따르는 많은 젊은 화가들이 생겨났다. 천편일률적인 화풍을 강요하는 답답한 화실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추구했던 빛의 화가들은 동시대 수많은 논란 속에서 하나의 화풍을 만들어 나갔다. 비록 마네 자신은 인상파에 조차 적극 가담하지 않는 비교적 기인적인 삶을 산 사람이지만 그가 이룬 업적은 전통과 혁신을 연결하는 근대회화의 선구자로서 인상파의 아버지로 불리며 후기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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