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우체국 각 서비스 바로가기 우표포털 본문내용 바로가기 우표포털 하단 바로가기

한국우표포털서비스 K-stamp

  • 우표배움터

    • 우표의역사
    • 즐거운우표수집
  • 우표정보

    • 한국우표
    • 세계우표
  • 우표시장

    • 우표장터
    • 온라인 구매
    • 오프라인 구매
  • 우표문화체험

    • 우표박물관
    • 우표전시회
  • 우표로보는세상

    • 해외우취소식
    • 우편 130년
    • 우표 명작을 말하다
    • 우정이야기
    • 우표수집정보
    • 시간여행
    • 우표디자이너 인터뷰
    • 우표 뒷이야기
    • 대한민국 방방곡곡
    • 우정문화웹툰
  • 어린이 우표세상

    • 우표야놀자
    • 청소년 우표교실
    • 우정문화 동영상
    • 우표배경화면
  • 인기
우표스쿨 우표갤러리 우표 샵 우표박물관 우표로 보는 세상 쥬니어 스탬프

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세종대왕 집현전 설치&&프랑스의 화가 그로&&러시아 무선연구가 포포프
등록일 2010. 3. 16.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3월 16일

세종대왕 집현전 설치

세종대왕 집현전 설치 내용시작 1392년(조선 태조 1) 7월에 제정된 관계에 따르면 고려의 제도를 도습하여 보문각(寶文閣) ·수문전(修文殿) ·집현전(集賢殿)이 그대로 존치되어 있었으나,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집현전을 확대하여 실제의 연구 기관으로 개편하였다(1420). 그 직제는 겸관(兼官)으로 영전사(領殿事:정1품) 2명, 대제학(大提學:정2품) 2명, 제학(提學:종2품) 2명을 두었으나 실제로 직무를 집행한 것은 녹관(祿官)인 전임직이었다. 그 인원은 처음에 10명이었으나 점차 증원되어 36년(세종18) 20명으로 확정되었다. 세종은 학사들의 연구에 편의를 주기 위하여 많은 전적(典籍)을 구입하거나 인쇄하여 집현전에 보관시키는 한편, 재주 있는 소장 학자에게는 사가독서(賜暇讀書)의 특전을 베풀었다. 이로써 수많은 뛰어난 학자들이 집현전을 통하여 배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임무는 ① 학사 20명 중에서 10명이 경연(經筵)을, 다른 10명은 서연(書筵)을 담당하였고, ② 집현전이 궁중에 있고 학사들이 문필에 능하다는 이유로 그들 중 일부는 사관(史官)의 일을 맡았으며, ③ 사령(辭令)의 제찬(制撰)을 담당하는 한편, ④ 중국 고제(古制)에 대하여 연구하는 일 등이었다.

프랑스의 화가 그로

프랑스의 화가 그로 내용시작 고전파의 마지막 거장, 낭만파의 선구자로 불리며 나폴레옹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프랑스의 화가 그로(Gros, Antoine-Jean Baron de, 1771~1835). 그러나 이런 화려한 명성에 반해 그의 말년은 심한 우울증과 패배감에 시달리며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 나폴레옹 시대 말기의 중요사건을 그린 역사그림으로 유명한 그로는 전통적 기법을 바탕으로 현실적이며 색채의 명암이 뚜렷한 회화적 효과를 추구하는 낭만파적인 화풍을 보여주었다. 세밀화가 였던 아버지에게서 그림수업을 받았던 그로는 아버지의 친구인 다비드의 문하생으로 미술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에게 다비드는 스승이자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껴졌다. 그로는 스승 다비드의 화풍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속에 묻어두었고 오히려 스승의 화풍을 전승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결국 먼 훗날 비극으로 치닫는 결과의 하나로 작용하고야 만다. 1793년 다비드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로는 나폴레옹의 연인인 조제핀을 만난 인연으로 황제의 측근에서 그림을 그리는 종군화가로서 활약하게 되었다. '아르콜의 다리에 선 나폴레옹 (Napoleon on the Bridge at Arcole, 1796)'을 완성시키며 나폴레옹으로부터 신임을 얻은 그로는 잡지 검열관의 지위를 받으며 이탈리아의 예술작품을 선별하여 루브르 박물관으로 보내는 일을 하였다. 그로는 나폴레옹 신화에 공헌한 화가중에 유일하게 참다운 재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로의 작품들은 결정적인 순간의 감동적인 장면을 바로크풍의 우아한 감각과 극적인 힘으로 표현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고 그의 이러한 화풍은 테오도르 제리코와 외젠 들라크루아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고전주의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그로는 스승인 다비드의 기법을 전승하고자 했으며, 루브르 박물관의 이집트 전시실 천장그림(1824경) 등 규모가 큰 작품들을 잇달아 그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다비드의 비판에 줄곧 시달렸으며 자기 그림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져갔다. 이러한 패배감에다 타고난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 결국 센 강에 투신자살을 하고 말았다.

러시아 무선연구가 포포프

러시아 무선연구가 포포프 내용시작 초기 무선전신의 발전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던 포포프(Popov, Aleksandr S., 1859~1906)는 마르코니에 앞서 세계 최초로 무선전신을 발명한 러시아의 무선연구가이다. 포포프는 당시 헤르츠, 브랑리, 로지 등이 연구한 전자기파(電磁氣波)와 검파기(檢波器)에 관한 연구에 고무되어 본격적으로 무선전신을 연구 개발하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1895년 5월 최초의 공개실험 성공과 더불어 인류의 통신방법에 획기적인 길을 열었다. 그러나 포포프가 이루어낸 신기원적인 무선통신은 세계최초라는 공식 기록에서는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하였다. 포포프는 자신의 발명에 대한 특허를 내어 시장을 독점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더불어 외국자본의 원조를 받아 그 기술의 보급과 발전을 도모하는데 반대하였다. 결국 무선개발의 원조(元祖)로서의 공적은 한 해 늦게 세계 최초의 특허를 낸 이탈리아의 마르코니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최초의 실험이 성공을 거둔 이후 포포프는 1897년부터 해군과 협력하여 무선전신 시설을 장치하여 지속적인 실용화에 노력하였고 1899년에는 50km 떨어진 거리에서 무선통신을 성공시키는 등 초창기의 무선전신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1901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 전기기술 연구소의 교수가 되었고 후에 소장으로 선임되었다. 러시아는 매년 5월 7일을 무선전신의 날로 정하여 그의 공적을 기념하고 있다.

지난시간여행 이전글 다음글 보기
이전글 네덜란드의 의학자 실비우스&&세계최초 혈액은행 설치&&4.19혁명을 촉발시킨 3.15 부정선거
다음글 18세기 최대의 동물화가 우드리&&고속내연기관 발명가 다임러&&최초의 실용잠수함 - 1898.3.17

기 발행된 모든 우표류(우표, 엽서, 원화, 우표책, 우표첩, 날짜도장)의 이미지 및 내용을 사용할 수 있으나, 이미지와 내용을 변경하여 사용시에는 우정사업본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