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25전쟁 발발&&프랑스 유머작가 쿠르클린&&최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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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 6. 25. |
첨부파일 | 첨부파일없음 |
6.25전쟁 발발 1950년, 한반도는 전쟁의 포화가 가득했던 참혹한 땅이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던 슬픔의 땅이었다. 그리고 6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 풍요와 평화 속에서,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겪었던 비극의 역사를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6.25 전쟁은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이 땅을 모든 것이 사라진 폐허로 만들었다. 동족 간에 총구를 겨누어야 했던 참담한 역사를 남기고, 남북으로 갈라져 만날 수 없는 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 손닿을 곳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들은 이제 휴전 57년이 흐르면서 삶의 마지막 여정에 서서 살아생전 가족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6.25 전쟁 60주년을 맞는 이 때, 거창한 정치적 이념은 차치해 두고서라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60년 전 자유를 위해 그들이 목숨을 바치며 지켜낸 조국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기념우표는 휴전선 철조망 위를 평화롭게 노니는 한 마리 나비를 그리고 있다. 자유롭게 날갯짓하는 나비를 보며 한반도에도 그러한 평화가 넘치는 날이 오기를 꿈꿔 본다. 프랑스 유머작가 쿠르클린 프랑스의 작가로서 23세의 나이에 '현대파리(Paris moderne)'라는 문학잡지 창간을 통하여 문단에 데뷔한 쿠르틀린(Georges Courteline, 1858.6.25~1929.6.25)은 프랑스 최고의 유머 작가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는 1893년 '부부로슈, Boubouroche'가 자유극장에서 공연되어 갈채를 받고부터 희극작가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계급이 낮은 관리들, 소시민들의 생활을 가벼운 풍자와 웃음을 통하여 사회생활, 사회구조의 밑바닥에 깔린 습관 등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한 작품들이며, 소시민들의 무지함, 인색함, 인간의 연약함, 선량함 등 일상적인 진실을 가벼운 터치로 그려냈다. 주요 작품으로 '경찰서장님은 마음씨가 좋아(1899)', '우리 집의 평화, La Paix chez soi(1903)', '관료들, Messieurs les ronds-de-cuir(1893)' 등이 있다.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1852년 6월 25일 에스파냐 남부에서 구리세공장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Antonio Gaudiy Cornet, 1852.6.25~1926.6.10)는 17세 때부터 건축을 공부하였다. 바르셀로나의 건축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학창시절에 비라르와 폰트스레 등의 조수로서 설계활동에 종사하였다. 그는 학창시절, 대담하고 혁신적인 건축설계로 과제물마다 논란을 일으키며 ‘괴짜 아니면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1878년 학교 졸업 후부터는 자신만의 독자적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그의 천재성을 간파한 부유한 은행가문 출신의 구엘 도움으로 돈 걱정이 사라진 뒤부터 아파트에서 대학 건물, 성당 등 명작들을 쏟아 내었다. 1883년부터 선배 뒤를 이어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대성당)의 설계와 공사를 맡으면서도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놓은 듯한 6층짜리 아파트 카사밀라, 기묘한 창문으로 유명한 카사 바트요, 후원자 구엘을 기념하기 위한 구엘 공원 등도 잇따라 선보였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사생활이 곧 건축이었던 가우디는 낡은 침대 하나만 남기고 192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건축작품은 바로셀로나와 스페인에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영원한 풍요를 선사하고 있다. 스페인의 항구도시 바르셀로나를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가우디가 설계한 작품들이 즐비한 광경을 탐닉하기 위함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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