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제1회 총 인구조사 실시&&제1회 국제 노동절행사&&세계 최초의 국제박람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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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 5.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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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총 인구조사 실시 1949년 5월 1일 대한민국의 첫 인구조사가 실시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인구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조선 총독부에 의하여 행해진 간이국세조사(簡易國勢調査)가 시초이다. 본 조사는 인구의 성장률, 분포상태, 인구이동, 출산수준 및 취업, 실업 등의 고용상태 등을 파악하여 각종 선거의 법정인구를 확정케 되고 합리적인 경제개발계획 수립 및 가족계획 사업 등의 기초자료가 됨은 물론 국제간의 인구 현황을 비교 연구하게 하는등 광범위한 국가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삼는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업국가로서 농업정책의 수립은 물론 도시의 인구 집중으로 인한 주택 건설계획의 기초자료로도 사용된다. 또한 본 조사에 있어서는 조사업무 수행 중 알게 된 개인 혹은 단체의 비밀은 보장하고 있으며 조사 결과는 단지 국가정책 수립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현제 위나라는 1960년 대규모 조사 이후 현제까지 10년 주기로 실시하며 중간 5년 마다 간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제1회 국제 노동절행사 자본주의의 급격한 팽창 속에서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여건과 비인간적인 삶은 19세기 후반 세계 노동운동의 중심적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1866년 마르크스가 제1차 인터내셔널 강령에서 8시간 노동제의 법제화 등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미국으로 전파되어 당시 광범위한 노동운동으로 전개되었고, 드디어 1884년 5월 1일 미국의 방직노동자의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시작으로 1886년 5월 1일 시카고 '노동조합연합회'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되찾고자 전반적인 시위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부상당하는 등 강압적인 탄압이 극에 달하였다. 이러한 사정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1889년 파리 제 2차 인터내셔널 대회에 보고되었고 미국 노동자의 5월 1일 시위를 기념하여 1890년 5월 1일 국제적인 시위운동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국제메이데이 행진은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날로서 메이데이(May Day) 또는 워커스데이(Workers' Day), 노동절(勞動節, Labor Day)로 불리는 국제적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중심으로 5월 1일 행사를 치러오다 1958년부터 대한노동조합총연맹(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 기념일인 3월 10을, 다시 1994년부터 5월 1일로 환원되었다. 명칭 또한 5.16 군사혁명 이후 계급투쟁의식을 내포하는 노동자에서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바꾸며 1963년 근로자의 날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 최초의 국제박람회 런던 만국 박람회, 혹은 수정궁박람회로 불리는 세계최초의 국제박람회가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1851년 5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개최되었다. 최신발명품 등 농, 상, 공업 분야의 여러 가지 물품을 모아 전시하는 박람회는 1798년 프랑스 혁명기의 파리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이후 1849년까지 파리에서 11회에 걸쳐 개최되며 서서히 규모가 커져 갔고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에서도 개최되면서 인기 있는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그때까지의 박람회는 국지적인 형태로 국내전시회의 성격이었으나 1849년 프랑스의 수상이 국제 박람회를 제창해 1851년 제1회 국제 박람회가 런던에서 개최되게 된것이다. 런던 만국 박람회는 큰 성공을 거둔 1844년 프랑스 공업 박람회를 모델로 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과 ‘왕립 미술공업상업진흥회’가 주축이 되어 개최하였고, 박람회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수정궁(Crystal Palace)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유리와 철골로 만들어진 폭 563m 너비 138m의 이 호화로운 대형 건축물은 조지프 팩스턴 경이 설계하여 약 9개월간의 건축기간을 거쳐 1941년 완전히 철거될 때 까지 전시회 건축물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런던 만국 박람회는 186,000 파운드의 이익을 남겼고 이 이익금은 이용해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런던 과학박물관’, ‘런던 자연사 박물관’을 설립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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