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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천장절에 울려 퍼진 천둥소리&&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영국이 낳은 위대한 지휘자
등록일 2010. 4. 29.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4월 29일

천장절에 울려 퍼진 천둥소리

천장절에 울려 퍼진 천둥소리 내용시작 1932년 4 월 29일 상해 홍구(虹口) 공원에서 일본제국주의 무리에게 폭탄을 던진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의 쾌거는, 한국인과 세계민중의 가슴을 영원히 진동시킬 불타는 민족의지였으며, 중화민국의 고(故)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대군이 못한 일을 한국이 청년 한사람이 해냈다”라고 크게 감동했던 장거(壯擧)였다. 1932년 김구선생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윤봉길 의사는 일왕의 생일인 4월 29일 천장절(天長節)에 상하이사변 전승기념식장에 들어가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주중(駐中)일본공사 시게마쓰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5월 25일 상하이파견군 사령부 군법회의 예심에서 오사카로 이송, 12월 18일 가나자와 형무소로 옮겨져 19일 총살되었다. 이날 세계에 떨친 우리의 독립의지는, 당시 한민족과 소원한 상태에 있던 중국을 움직여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이 시작되는 발단이 되었다. 이후 1933년에는 중국의 낙양군관학교에 광복군 특별반이 설치되고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는 한국의 독립을 결의하는 등 조국광복의 서광이 비쳐지기 시작하였다. 윤봉길의사를 비롯한 여러 선열들의 순국의지와 숭고한 희생정신은 우리민족 본래의 근면성과 우수성에 빛을 더하여 적은 부존자원과 6.25전쟁의 폐허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놀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으며, 민족통일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을 더욱 깊게 해 주고 있다. 윤봉길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세계 여자농구 선수권대회는 1953년 제1회가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열린 이후 매 4년마다 윤번제로 세계 각국에서 열리고 있다. 1974년 7월에 열린 세계농구연맹 이사회에서 제8회 대회는 대한민국에서 개최할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한 결과 서울에서 이 대회가 1979년 4월 29일부터 5월 13일까지 개최될 것이 확정되었다. 당시 세계여자농구 선수권대회가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었고 한국으로서도 세계적 규모의 공식 선수권대회를 주최하는 것은 한국농구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세계 여자농구 선수권대회는 세계 각 지역을 대표하는 13개국 농구 강국이 참가하며 농구계에 있어서는 가장 권위 있는 대회중의 하나이다.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 제8회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은 2위를 차지하며 우리나라 여자 농구의 세계 최강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지휘자

영국이 낳은 위대한 지휘자 내용시작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영국의 오페라와 관현악을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개선시킨 영국의 지휘자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비첨(Sir Thomas Beecham, 2nd Baronet, 1879.4.29 ~ 1961.3.8)은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다양한 공연의 관람을 비롯 여러 음악가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정식적인 학교 음악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타고난 음악적 감각덕분에 성공적인 아마추어 지휘자로 활약하였다. 1905년 런던에서 공식 데뷔무대를 성황리에 마친 비첨은 유럽 각지의 유명 음악가들을 영국에 초청하여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으며 그 자신 또한 연주여행을 통해 영국의 오케스트라를 해외에 소개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비첨은 자신의 재산을 영국의 음악적 발전에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 같은 열정은 1947년 런던에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설하며 절정에 달했다.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연주여행을 다녔던 비첨은 영국이 낳은 위대한 지휘자로서 근대 영국 공연문화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16년 기사작위, 1957년 명예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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