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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영원한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 출생&& 나는 한국인이요&& 명동성당 준공
등록일 2010. 5. 29.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5월 29일

영원한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 출생

영원한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 출생 내용시작 1963년 미국의 댈러스에서 두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 사건으로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케네디(John F. Kennedy, 1917. 5. 29~1963)는 치명상을 입고 사망하였고 ‘리 하비 오즈월드’가 저격범으로 체포되었다. 이날 전 세계는 이 젊은 대통령을 잃은 충격에 휩싸였고 그에 대한 추모의 물결은 끊이질 않았다. 재임 당시 쿠바 미사일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핵실험금지조약을 체결하였고 1963년 중남미 여러 나라와 ‘진보를 위한 동맹’을 결성하였으며 평화봉사단을 창설하여 국제평화의 정착에 많은 업적을 남겼던 그는 탁월한 연설가의 기질과 매스컴을 잘 활용하여 모든 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대통령이었다. 양심상의 문제로 여론에 도전한 8명의 위대한 미국 정치 지도자들을 다룬 ‘용기 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 1956)을 저술하여 1957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공직에 출마하여 한 번도 선거에서 패배해본 적이 없었다. 그의 일가 역시 정치가로서 성공하였으나 케네디가의 괴담으로 알려질 만큼 모두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주변을 안타깝게 하였다.

나는 한국인이요

나는 한국인이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 난 손기정 옹(孫基禎, 1912. 5. 29 평북 신의주~2002. 11. 15 서울)은 기독교 사상가인 김교신 선생이 교사로 일한 양정보통학교(현: 양정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1940년 일본의 메이지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육상 선수로 활약하였던 손기정 옹은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마라톤선수생활을 시작하여 1933년부터 1936년까지 13개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 그 중 10개를 우승하는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표선수로 선발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1935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 대회 최종예선을 겸한 전(全)일본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실력으로 일본인들을 누르고 우승하여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1936년 독일에서 열린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 일본대표로서 참가한 손기정 옹은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리며 월계관을 썼다. 혜성처럼 나타난 동양의 선수에게 전 세계 언론은 집중되었고 세인의 관심을 끌었지만 손기정 옹은 일본 대표팀의 소속으로 뛰었고 가슴에는 일장기가 달려 있었다. 그러나 손기정 옹은 한국어 이름으로만 서명했으며 그 옆에 한반도를 그려 넣기도 했다. 인터뷰에서도 그는 자신의 모국이 한국이라고 밝혔다. 상을 받을 때도 한국이 아닌 일본의 국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당시 조선중앙일보가 그의 수상 소식을 알리면서 의도적으로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일어났으며, 손기정 자신은 전차를 타는 것조차 일본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1944년까지 조선저축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일했던 손기정 옹은 광복 후에는 평생 대한민국의 체육계를 위해서 살았으며 많은 공헌을 하였다.

명동성당 준공

명동성당 준공 내용시작 천주교 서울 대교구 주교좌 성당인 명동성당은 1883년 무렵 김 가밀로의 명의로 종현(鍾峴) 일대의 대지를 구입하며 건립을 시작하였다. 명동성당은 당시의 교구장 블랑(Blanc) 주교의 신학생 교육을 위한 종현서당 설립 운영이 그 시초이며 풍수지리설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와 토지 분쟁이 있었으나, 1890년 이를 마무리 지었고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뮈텔(Mutel) 주교에 의해 1892년(고종 29)에 착공하여 1898년에 준공되었다.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Eugene Coste)가 설계와 공사감독을 하였고 성당의 건축 과정에서 많은 신자가 무료로 노력 봉사를 하였으며, 성당의 건축에 쓰인 벽돌은 청나라의 벽돌공을 데려다가 만들었다고 한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자들의 유해를 지하묘지에 안장했으며,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하여 성당 명칭은 종현성당에서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 1898년 5월 2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 축성식을 갖고 마리아께 봉헌된 명동성당은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양식 건축물로 기록되며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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