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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8000m급 14좌 정복&&실패한 극좌적 오류&&5.16 군사 정변
등록일 2010. 5. 16.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5월 16일

8000m급 14좌 정복

8000m급 14좌 정복 내용시작 2001년 5월 16일 1m68cm, 60kg의 작지만 다부진 체구의 산악인 엄홍길은 해발 8천 미터가 넘는 거봉의 정상에서 태극기를 높이 흔들었다. 집념의 산악인 엄홍길의 감회는 단순히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의 로체를 정복했다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새벽 3시30분 7500m 최종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5시간 45분 만인 9시 15분 정상을 밟는 순간 그는 8천 미터급 14좌를 모두 등정하는 대기록을 세운 세계 8번째 사나이가 된 것이다. 1988년 세계 최고봉에 오르면서 시작된 그의 집념은 이미 2000년 7월 31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 정상에 으르며 세계에서 7번째로 14좌모두를 정복해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1995년의 로체봉 등정을 인정받을 기록이 없어 안타깝게도 그 꿈을 뒤로 미뤄야만 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나 산악인의 꿈을 키우며 숱한 고난과 역경을 거치고 이날 이룩한 쾌거는 비단 산악인 엄홍길만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그가 사랑하고 아꼈던 모든 산악인과 국민들의 가슴속에서 함께 할 것이다.

실패한 극좌적 오류

실패한 극좌적 오류 이른바 문혁기로 대변되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권력의 존립기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의 주도로 1965년 가을부터 약 10여 년 동안 중국 사회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킨 대규모 극좌 사회주의 군중운동이었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1966년 5월 4일부터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의 북경확대회의에서 마오쩌둥 주석의 승인을 받은 ‘5ㆍ16 통지(通知)’에서 처음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후 1966년 8월 8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발표된 16개 조항의 결정안에 따라 천안문 광장에서 시작된 홍위병들의 전국적인 무력행동은 중국 현대사의 큰 상처를 안기며 전국을 광풍으로 몰아넣었다. 문혁기 동안 약 300여만명의 당원이 숙청되었고 부정부패의 만연과 함께 중국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기나긴 암흑과 고통의 시간이었던 약 10년간의 전국적인 혁명은 동조자들의 회의에 따르는 내분과 반대세력의 급부상으로 1976년 마오쩌뚱 핵심 추종 세력인 4인방의 축출과 함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문화대혁명을 모든 인민에게 절망을 가져다 준 실패한 극좌적 오류로 규정하였다.

5.16 군사 정변

5.16 군사 정변 내용시작 1961년 5월 16일 새벽, 일단의 병력들이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 거점을 장악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제2군 부사령관인 소장 박정희와 육사 8기생을 중심으로 한 장교 250여명과 사병 3500명은 방송국을 점령, ‘군사혁명 조직위원회’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음을 선언하고 6개항의 혁명공약을 선포한 것이다. 분열된 정치권과 부정부패에 찌든 군부는 무력하게 무너졌고 속전속결로 미국의 지지를 끌어낸 혁명세력들은 군사혁명위원회를 개칭한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당시 4.19혁명을 계기로 집권한 민주당은 신ㆍ구파 간 권력투쟁의 갈등으로 인한 분열과 군 내부의 고급 장성의 부정부패로 인한 승진 적체현상에 대한 쌓인 불만은 결국 합법적인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3년간의 군정 통치를 시작한 혁명 세력은 쿠데타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위해 미봉책에 불과한 급조된 개혁조치를 내어 놓았으나 오히려 많은 문제점과 병폐를 낳았고 중심 세력들이 저지른 부정축재와 맞물려 그들의 허물을 감추고자 ‘혁명’이라는 핑계아래 수많은 정치적 탄압이 자행되었다. 이러한 병폐로 인하여 군정에 대한 국내외의 강한 불만이 제기되자 민정이양이라는 명목 속에 헌법 개정 등을 통하여 민간정부를 장악하기위한 사전 준비가 이루어졌고 결국 이름만 바뀐 제3공화국의 탄생은 이후 32년간 군부통치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렇듯 1961년 5월 16일의 사건은 혁명의 동기가 어떠했건 그 진행 과정과 결과를 놓고 볼 때 이는 분명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후퇴시켜버린 결과의 발단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이후 산업화와 근대화의 기틀을 구축하고 오늘의 눈부신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긍정적 평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쿠데타’로 규정지어진 이날의 사건은 그 평가를 역사에 맡긴다고 한 것처럼 그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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