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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한국최초 고아원 설립자, 원두우&&움직이는 인체를 그리는 화가, 드가&&보불전쟁[프랑스-프로이센전쟁]발발
등록일 2010. 7. 19.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7월 19일

한국최초 고아원 설립자, 원두우

 한국최초 고아원 설립자, 원두우 내용시작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 교육자, 성서번역가였던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7.19~1916)의 한국명은 원두우(元杜尤)이다. 그는 1884년 7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임명에 따라 이듬해 감리교 목사인 H. G.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에 입국했다. 1886년 한국 최초의 고아학교(고아원)를 설립했는데 이 학교가 경신학교의 전신이 되었으며, 1887년 9월에는 새문안교회를 설립했다. 또한 1889년 한국예수교성교서회를 창설하여 문서를 통한 선교실무를 관장했으며 “한국어문법”을 편찬·간행했다. 1900년 기독교청년회(YMCA)의 조직 및 1915년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설치하여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에 바탕이 되었다. 그밖에 세브란스 의학교, 피어선 성경학원, 평양 장로교신학교 등의 설립에 주도 역할을 했으며, 성서번역사업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여 한국 최초로 찬송가를 간행했다. 이와같이 언더우드는 한국 개화기에 종교/정치/교육/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공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움직이는 인체를 그리는 화가, 드가

 움직이는 인체를 그리는 화가, 드가 내용시작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장남이었던 드가(Edgar Degas, 1834.7.19~1917.9.17)는 한때 가업계승을 위해 법률하기도 하였으나, 1855년 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고전파에 대한 경의 및 르네상스 작품에 심취하는 등 고전연구에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 후, 파리의 근대적인 생활에서 주제를 찾게 되자 더욱 재능을 발휘하여 정확한 소묘능력 위에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이 넘치는 근대적 감각을 표현하였다. 인물동작을 잡아 순간적인 포즈를 교묘하게 묘사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부분적으로 부각시키는 수법을 강조해왔다. 경마나 무희, 욕탕에 들어가거나 나오려는 여성의 한 순간의 동작을 즐겨 그렸다. 이러한 그의 눈과 기량은 파스텔이나 판화에도 많은 수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만년에 시력이 극도로 떨어진 뒤에 손댄 조각에까지 더없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선천적으로 자의식(自意識)이 강한 성격 때문에 독신으로 보냈고, 그의 인간혐오증은 늙어갈수록 더하여 고독한 가운데 파리에서 83년의 생애를 마쳤다. 주요 작품으로, '카뮈 부인, Madame Camus(1869~70)', '뉴올리언스 목화 거래소, New Orleans Cotton Office(1873)', '압생트, The Absinthe Drinker(1876)'등이 있다.

보불전쟁[프랑스-프로이센전쟁]발발

 보불전쟁[프랑스-프로이센전쟁]발발 내용시작 보불전쟁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Franco-Prussian War, 1870. 7. 19~1871. 5. 10)은 유럽대륙에서 프랑스의 주도권에 종지부를 찍고 독일 제국을 성립시킨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보불전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에스파냐 국왕 선출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분쟁으로, 그 과정에서 일어난 엠스전보(電報)사건은 프랑스와 프로이센 양 국민을 격앙케 하여 1870년 7월 19일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하였다. 전세는 북독일 연방제국과 남독일의 지지를 얻은 프로이센 독일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전쟁 돌입 후 2달여 만에 나폴레옹 3세가 독일군에게 행복하였다. 프랑스 파리를 포위한 독일군에 대항하던 프랑스는 결국 1870년 9월에는 스트라스부르를, 10월에는 메츠요새가 함락됨으로써 1871년 1월 마침내 파리의 성문을 열어주게 되었다. 파리 함락 직전에 베르사유에서 독일제국의 성립이 선포되었으며, 1871년 2월 베르사유에서 평화협정을 5월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되어 프랑스는 독일에 배상금 50억 프랑을 지불하고 알자스-로렌 지방 대부분을 할양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에 의한 교황청의 세속 권력이 붕괴되고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군사력이 강해짐에 따라 1차세계대전까지 불안정한 유럽정세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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