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2일
민방위대 발대식, 전국에서 시작
1976년 9월 15일 우리나라에 민방위대가 창설되었다.
우리나라 민방위대는 1975년 8월 26일 민방위 기본법의 발효에 따라 그해 9월 15일에 조직 편성됨으로서 우리나라 민방위의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 후 9월 22일 민방위대가 전국적으로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민방위대는 적의 침공이나 자연 및 인위적인 재난으로부터 우리 자신 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자위수단으로서 창설되었으며 정부의 지도하에 방공, 응급적인 방재, 피해복구 및 구조 활동 등 일단 유사시에 대처 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국민총화 대열에 앞장서 내 마을, 내 직장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나갈 것을 생활화하는 기반을 닦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집트 아부심벨 신전 이전공사 완료
1963년 우리나라는 아부심벨 대신전을 도안으로한 3원, 4원권(연쇄)의 기념우표를 발행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우표이기도 한 이 우표는 누비아 유적을 보호하자는 유네스코의 세계적인 운동에 호응하여 발행된 것이다.
누비아는 나일강 상류의 이집트와 수단 국경 지방의 옛 이름으로 이곳에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웅변하는 많은 유적이 있으며, 이 중에서도 아부심벨 대신전은 가장 웅대하고 이집트 문명의 정화로서 유명한 곳이다. 나일강변의 사암층의 사면을 절개하여 조각한 대 암굴신전으로 3,200여년전 이집트 제19왕조 람세스 2세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다.
표면에 조각된 4개의 거대한 좌상은 람세스 2세 자신의 상이며 그 높이가 각각 20여미터에 이르며 굴 안에 있는 신전을 수호하는 뜻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고대 이집트 문명의 보고가 이집트의 현대화를 위한 아스완댐 건설로 인하여 나일강의 흐린 물속에 잠기게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 이를 구출하자는 여론이 퍼지자 유네스코는 1960년도 총회에서 아부심벨 대신전의 구제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전개하기로 만장일치로 채택하였고 우리나라도 우표발행 수익의 일부를 유네스코에 기증함으로써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수장 위기에 처한 아부심벨 대신전은 유네스코의 헌신적인 노력과 현대공학의 혜택으로 신전을 원형대로 70m를 끌어올려 영구히 보존하게 되었다.
영국 물리화학자, 패러데이 출생
1791년 런던근교에서 가난한 대장장이 집안의 3번째 아들로 태어난 패러데이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13세 때 부터 제본 공장의 견습공으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제본소에서 일하며 다양한 책을 만난 패러데이는 특히 과학서적에 흥미를 가졌다. 평소 자신이 읽던 책의 내용 중 흥미 있는 부분을 꼼꼼하게 노트하는 습관을 가졌던 그는 어느날 그의 노트를 본 한 손님에 의해 평생 그가 갈 길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였다.
패러데이의 노트에 감명 받은 그 손님은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열리는 과학강연의 입장권을 양보하여 주었고 페러데이는 당대의 위대한 학자이자 훗날 그의 스승이 되는 데이비경의 강연을 듣게 된 것이다.
그 한 번의 강연에 푹 빠져버린 패러데이는 과학자로서의 길을 꿈꾸게 되었고 곧 데이비경에게 도움의 편지를 보내 결국 과학실험의 조수로 고용되기에 이르렀다.
과학실험실의 조수로서 본격적인 화학공부를 시작하게 된 패러데이는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매달렸다. 그 결과 염소의 액화(1823년), 벤젠(1825년), 금 콜로이드(1857년)등을 차례차례로 발견하였고 더 나아가 1831년에는 전자 유도 현상을 발견하였으며 1883년에는 전기화학의 기초를 만든 전기분해의 법칙을 발견하는 등 초인적인 과학자로서 활약하였다.
위대한 화학자였던 그의 스승 데이비조차 ‘나의 최대의 발견은 패러데이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다방면에 걸친 뛰어난 연구업적과 성과는 19세기 최고의 과학자로서 평가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스승 데이비의 뒤를 이어 영국왕립 실험소장을 역임한 패러데이는 1857년에 왕립 학회 회장에 추천되었으나 평소 세속의 영달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사양하였고 1867년 자택 의자에 기댄 채로 잠을 자듯이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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