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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황제 즉위&&사상최초 영국해협 논스톱 비행 성공 롤스&&페루의 ‘새마을 운동 주창자’ 정치가 카스타야
등록일 2010. 8. 27.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8월 27일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황제 즉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황제 즉위 내용시작조선의 제27대 왕(재위 1907~1910)인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민씨의 둘째아들로 1875년 세자로 책봉된 후, 1897년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1907년 고종이 이완용(李完用)의 강요에 못이겨 헤이그 밀사사건에 책임을 지고 하야하자, 같은 해 8월 27일 순종이 24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했다. ‘융희’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이미 외교권과 재정권을 박탈당한 대한제국은, 그해 8월 1일 일본의 압력으로 한국군마저 해산되었으며, 12월에는 황태자 영왕(1897-1970, 순종의 이복동생, 일본이 영친왕으로 격하하여 부름)이 유학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가게 된다.
1908년 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의 설립을 기화로 경제침탈의 길을 뚫은 일본은 1909년 조선의 국권탈취공작을 착착 추진,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합병조약을 조인함으로써 마침내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망하고 한국은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써 순종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되었다. 이로써 조선왕조의 5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한때 순종 즉위식 친필서명 관련 기사가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진 바 있다. 내용인즉 한일강제병합조약 문서에는 순종황제의 수결이 없다는 내용의 보도기사였다.
519년의 조선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왕이라는 타이틀을 지우지 못한 채 나약하고 무능력한 왕으로 취급받은 그 이지만, 조선의 마지막 왕으로써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만큼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사상최초 영국해협 논스톱 비행 성공 롤스

사상최초 영국해협 논스톱 비행 성공 롤스 내용시작롤스로이스사의 창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롤스(Charles Stewart Rolls, 1877.8.27~1910)는 1910년 6월 사상 최초로 영국 해협을 가로지르는 논스톱 비행에 성공한 비행사였다.
그는 1900년도의 1,000마일 경주에서 12마력의 팬하드 차를 몰았고 전통적인 유럽장거리경주대회의 초창기 시합에도 여러 번 참가했다.
1902년 자동차 판매업자가 되었고, 1906년에는 헨리 로이스 경의 회사와 자신의 회사를 합병시켜 롤스로이스사를 만들었다.

페루의 ‘새마을 운동 주창자’ 정치가 카스타야

페루의 ‘새마을 운동 주창자’ 정치가 카스타야 내용시작페루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카스티야(Ramon Castilla, 1797. 8. 27~1867. 5. 25)는 페루의 정치를 대통령으로 또는 막후에서 거의 20여년간 지배했다.
보수주의자였던 그는 현명하게 사회 각 부문에 양보조치를 하고 장기간에 걸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다.
1841년 아구스틴 가마라 대통령이 죽고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자 권력을 잡고 1845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851년까지 대통령으로 봉직했다. 1855년에는 후임 대통령 호세 루피노 에케니케를 내쫓고 1862년까지 통치했다. 그가 권력을 잡은 무렵 페루는 거의 20년간 무질서와 반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강력하고 능숙한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집권 중에 막대한 구아노[糞化石]와 질산나트륨이 페루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자원에서 나온 수익에 힘입어 그는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국채를 줄였으며, 학교를 짓고 운송체제를 개선하고 국내 사업을 육성했다.
또한 흑인 노예제와 인디언에게 부과하는 인두세를 철폐하고 교회재판과 강제 십일조를 없앴다.
1860년 참정권을 축소하고 대통령에게 더 큰 권력을 주며 로마 가톨릭 교회만을 배타적으로 인정한 페루의 새 헌법을 지지했다.
이 헌법은 1920년까지 효력을 발휘했다. 1862년 카스티야의 가부장적 전제정치가 막을 내리자 페루는 또다시 20년간의 혼란과 반란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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