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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다시 찾은 서울, 수도 탈환&&여객선 "에스토니아호" 침몰, 대참사&&"승리의 아버지", 프랑스 클레망소
등록일 2010. 9. 28.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9월 28일

다시 찾은 서울, 수도 탈환

다시 찾은 서울, 수도 탈환 내용시작한국에 천주교(Catholic Church)가 처음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한 이수광이 M.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 “중우론(重友論)” 등을 그의 저서《지봉유설(芝峰類說)》에 소개한데서 비롯된다.
한편, 이수광과 같은 시대의 허균(許筠)도 베이징(北京)에 서 천주교의 12가지 기도문인 “십이단(十二端)”을 가지고 귀국하였는데,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로 기록된다.
최초의 조선천주교회는 1784년 2월중국어 역관 김범우(金範禹)의 집 대청에서 주일미사를 드리면서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한국의 천주교는 박해가 계속되는 형극(荊棘)의 길을 걸어야 했으며, 그러한 박해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 때까지 계속되었다. 91년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고발로 이른바 ‘진산사건(珍山事件)’, 1801년 신유(辛酉)박해 및 오가작통법 시
행,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대원군 집정당시의 병인박해 등으로 수많은 조선의 천주교인들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창씨개명 및 신사참배 등을 강요하는 한편, 각 교구의 외국인 성직자를 가두었다가 미국인 성직자는 본국으로 추방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한국인 신부들을 구속하는 등 온갖 횡포를 자행 하였다. 이러한 박해 속에서 죽어간 신도가 병인박해에서만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 로마 카톨릭교황청의 교황 요한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920.5.18~2005.4.2)는 103명의 한국 가톨릭 순교자를 성인으로 승품시켰다.

“승리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프랑스의 정치가 클레망소

“승리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프랑스의 정치가 클레망소 내용시작프랑스의 정치가, 언론인, 의사로 활약한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 1841.9.28~1929.11.24)는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 의회의원으로 정계를 주름잡았고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의 총리(1917~20)로서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전쟁 후에는 베르사유 조약의 골격을 구성하 는데 큰 역할을 했다. 클레망소는 파리코뮌이 성립되기 직전 파리 제18구(區) 몽마르트르의 구장으로 선출되어 그것을 기반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1871년 7월 급진공화당원으로 의회에 진출하였다. 1893년 파나마사건으로 한때 정계를 떠나 있었으나, 1894~1906년의 드레퓌스사건에서 드레퓌스의 옹호를 위해 힘쓴 결과, 개인의 명예회복과 함께 1903년 상원의원이 되었다. 1906년 3월 사리앙 내각의 내무장관, 이어서 총리 겸 내무장관이 되어 8시간 노동제 ·생활개선 ·민주제화 등을 공약하는 한편, 영국 ·러시아 양국과의 협조체제를 확립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상원의 육군위원장으로 활약, 1917년 불리한 전세에서도 총리 겸 육군장관에 취임하여 반역자나 패배주의자들을 즉결재판에 넘겨 총살하는 등 강경책으로써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어 냄으로써 그의 냉정하고 끈덕진 전쟁 수행력을 높이 기려 '승리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전쟁 후에는 파리강화회의에 프랑스 전권대표로 참석하였고, 미국 대통령 W.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립하는 보복주의를 취하였으며, 베르사유조약을 강행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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