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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한국가톨릭 순교자 103위 성인 승품식&&여객선 에스토니아호 침몰, 대참사&&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 애덤스
등록일 2010. 9. 27.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9월 27일

한국가톨릭 순교자 103위 성인 승품식

한국가톨릭 순교자 103위 성인 승품식 내용시작한국에 천주교(Catholic Church)가 처음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한 이수광이 M.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 “중우론(重友論)” 등을 그의 저서《지봉유설(芝峰類說)》에 소개한데서 비롯된다.
한편, 이수광과 같은 시대의 허균(許筠)도 베이징(北京)에 서 천주교의 12가지 기도문인 “십이단(十二端)”을 가지고 귀국하였는데,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로 기록된다.
최초의 조선천주교회는 1784년 2월중국어 역관 김범우(金範禹)의 집 대청에서 주일미사를 드리면서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한국의 천주교는 박해가 계속되는 형극(荊棘)의 길을 걸어야 했으며, 그러한 박해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 때까지 계속되었다. 91년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고발로 이른바 ‘진산사건(珍山事件)’, 1801년 신유(辛酉)박해 및 오가작통법 시
행,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대원군 집정당시의 병인박해 등으로 수많은 조선의 천주교인들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창씨개명 및 신사참배 등을 강요하는 한편, 각 교구의 외국인 성직자를 가두었다가 미국인 성직자는 본국으로 추방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한국인 신부들을 구속하는 등 온갖 횡포를 자행 하였다. 이러한 박해 속에서 죽어간 신도가 병인박해에서만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 로마 카톨릭교황청의 교황 요한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920.5.18~2005.4.2)는 103명의 한국 가톨릭 순교자를 성인으로 승품시켰다.

여객선 “에스토니아호” 침몰, 대참사

여객선 “에스토니아호” 침몰, 대참사 내용시작자연으로 인한 것이든 인간으로 인한 것이든, 세계 최악의 재앙은 쉽사리 잊혀질 수 없다.
1980년 세인트헬렌스 화산 폭발이나 1989년 캘리포니아의 로나 피에타 지진 등 엄청난 대재앙 및 2001년 9월 11일의 미국대폭발테러사건 등은 지금도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남아있다.
그 중, 끔찍한 인재(人災)중의 하나로 손 꼽히는 여객선 “에스토니아호” 침몰 대참사도 그 중 하나라 할만하다.
1994년 9월 27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출발하여 다음날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도착할 예정이던 여객선 에스토니아호가 989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채 28일 새벽2시 경에 침몰했다. 생존자는 겨우 137명. 850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대규모 조난 사고였다. 사고 대부분의 승객이 잠든 새벽에 일어났고, 선장은 여객선의 침몰이 확실해진 후에야 첫 번째 경고방송을 내보냈으나, 대부분의 승객은 에스토니아어로 나온 경고 방송을 알아듣지 못했다. 에스토니아호 생존자들의 면면은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생존자의 3분의 1 이상은 승무원이었고 대부분 젊은 남자였다. 55세 이상 의 생존자는 7명뿐이었고 12세 미만의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기록된다. 가장 치열하고 이기적인 생존 경쟁을 경험한 생존자들은 아직도 그 때의 공포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스웨덴 정부가 선체와 사체 인양을 포기함으로써 희생자들은 아직도 바다 밑에 남아있다.

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 애덤스

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 애덤스 내용시작미국의 독립혁명 지도자인 사무엘 애덤스(Samuel Adams, 1722.9.27~1803.10.2)는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보스턴에서 출생했다.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애덤스는 1764〜1774년 매사추세츠 식민지의회 의원으로 활약하면서 영국정부의 식민지과세에 대한 반대운동을 지도하면서 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으며, 1765년 인지조례(印紙條例)를 반대하는 항의문을 기초(起草)하는 한편, 인간의 자연권(自然權)과 반영(反英)운동 관련 자료들을 제작하였다.
대륙회의 의장 J.핸콕 등의 후원으로 ‘혁명의 자식’이라는 혁명기관을 조직하고, 통신위원회를 통하여 혁명운동을 추진하였다.
그 후 보스턴차(茶) 사건의 주동자로 매사추세츠 총독의 체포령으로 인해 피신생활을 하였으나 혁명운동은 계속되었다. 1774〜1781년 대륙회의 대표로 활약하였다
※ 미국독립혁명(美國獨立戰爭, United States War of Independence): 영국의 식민지였던 북아메리카 13개주가 독립을 이룬 전쟁(1775년~1783년)
※ 보스턴차사건(Boston Tea Party) : 1773년 12월 16일 밤 미국 식민지의 주민들이 영국본국으로부터의 차(茶) 수입을 저지하기 위하여 일으켰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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