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0일
442년 만에 마카오, 중국에 반환
442년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가 12월20일 중국에 반환됐다. 이로써 아시아의 피식민 역사,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가 끝났다.
1987년에 있었던 '중국-포르투갈 마카오반환협정'의 약속에 따라 442년간 마카오를 점령·지배해온 포르투갈이 그동안의 영욕을 마감하고 아시아에서의 근거지에서 철수를 했던 것이었다.
포르투갈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짭짤한 세수원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반환되는 마카오를 맞이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깊은 감회가 만감하는 자리였다.
중국에 반환된 마카오는 카지노산업등의 관광산업에 집중투자 하여1999년 이전에는 700만명 수준이던 방문객의 수를 2010년에는 3000만명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다.
폴라로그래피 발명가, 물리화학자 헤이로프스키
프라하대학교에서 화학·물리학 등을 배운 후 런던대학교에서 유학한 체코슬로바키아의 물리화학자 헤이로프스키(Jaroslav Heyrovský, 1890.12.20~1967.3.27)는 프라하대학과 런던대학에서 각각 학위를 받았다.
그 후, 프라하대학교 교수 및 물리화학연구소장을 거쳐, 1950〜1963년에는 신설된 중앙 폴라로그래피연구소(現 이로프스키 물리화학·전기화학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적하수은전극(滴下水銀電極)을 이용하여, 용액 중에 흐르는 전류의 세기와, 거기에 가해진 전압 사이의 관계를 자동적으로 그리게 하는 폴라로그래피를 발명, 그것을 이용한 여러 물질의 산화환원반응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하여, 분석화학 및 용액화학 등 다른 분야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폴라로그래피 발명의 업적으로 1959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화가, 토로프
아르누보 양식의 주요한 인물로 꼽히는 토로프(Toorop, Jan, 1858.12.20~1928.3.3)는 암스테르담과 브뤼셀에 있는 미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특히 마네와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그의 양식은 후기인상주의 및 신인상주의의 점묘화법으로부터 당시 순수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모든 분야에까지 퍼진 아르누보 양식을 낳은 상징주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양식 발전을 반영하고 있다.
1887년 그는 상징주의 미술의 정신성을 강조하며 브뤼셀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들의 그룹인 '20인(人)회'(Les Vingt)에 가입했다. 말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그 뒤로는 자신의 독특한 '선(線)이상주의' 양식에 따라 종교적인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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