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九州) 중앙부에 자리한 구마모토현(熊本県)은 웅대한 자연과 깊은 역사를 간직한 고장이다. 활화산 아소산(阿蘇山)과 활단층이 분포해 있어 아름다운 자연의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지진과 화산활동이라는 자연재해의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구마모토를 대표하는 자연은 단연 아소산이다. 세계 최대급 칼데라(caldera)를 품은 아소산은 지금도 활발한 화산활동을 하고 있어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자도 세 차례 아소산을 찾았지만, 화산활동이 활발해 출입이 통제되거나 헬리콥터 사고 수습으로 접근이 제한되어 칼데라를 직접 내려다본 것은 한 차례뿐이었다. 그만큼 살아 있는 화산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소산에서 오이타(大分) 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규슈를 대표하는 구로카와(黒川) 온천마을이 있다. 수려하면서도 호젓한 산길과 개울을 따라 30여 곳의 온천이 자리하고 있고, 저마다 다른 분위기와 온천수를 자랑한다.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보여 주는 이곳은 일본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온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필자 역시 다시 찾고 싶은 규슈 최고의 온천으로 기억하고 있다.
현 서쪽 바다에 펼쳐진 아마쿠사 지역은 운젠아마쿠사(雲仙天草)국립공원의 중요한 구역으로, 120여 개의 섬이 이어진 아름다운 다도해다. 푸른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이 어우러져 '일본의 지중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경관이 뛰어나며, 리아스식 해안과 기암절벽, 잔잔한 만(灣), 작은 어촌이 조화를 이루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구마모토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구마모토성이다.
1588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구마모토의 영주가 된 뒤 성을 중심으로 계획도시를 건설하였다. 1607년 완성된 구마모토성은 일본 3대 성(城)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웅장한 천수각과 견고한 방어시설, 그리고 적이 쉽게 오르지 못하도록 아래는 완만하고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급격히 휘어지는 '무샤가에시(武者返し)' 석축은 일본 성곽 건축기술의 백미로 꼽힌다. 그러나 성을 축조한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장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여 우리에게는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2016년 4월 14일 저녁, 구마모토에 규모 6.5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어 이틀 뒤인 16일 새벽에는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의 최고 단계인 진도 7의 더욱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와 철도가 끊겼으며, 문화재와 주택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995년 고베(神戶) 대지진, 2004년 니가타현 주에쓰(中越) 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24년 이시카와현 노토반도(能登半島) 지진과 함께 손꼽히는 강진이었다.
복구가 진행되던 가운데 지난 7월 28일 오후, 10년 만에 또다시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하였다. 수많은 가옥이 피해를 입었고, 야쓰시로(八代)시에서는 제지공장 굴뚝이 붕괴되었으며 이온몰 폭발사고까지 이어져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구마모토성 역시 지진의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중요문화재이자 특별사적인 구마모토성은 1998년부터 대규모 복원사업을 진행하던 중 2016년 지진으로 천수각 최상층의 기와와 샤치가와라(鯱瓦, 호랑이 모양의 상상의 물고기가 장식된 기와)가 낙하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복원공사를 거쳐 2021년 천수각이 다시 공개되었다. 필자가 지난 6월 방문했을 때에도 성벽 곳곳에서 복구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천수각 내부에는 철근을 이용한 내진 보강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완전한 복구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으나, 이번 지진으로 다시 피해를 입으면서 복구 일정은 더욱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답게 방재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후쿠오카에는 시민들이 지진은 물론 화재와 소화, 강풍, 수해 등을 직접 체험하며 대응 요령을 익힐 수 있는 후쿠오카시민방재센터(福岡市民防災センター)가 있다. 필자도 이곳에서 진도 7의 흔들림을 체험해 보았는데, 강한 진동 때문에 책상 아래로 몸을 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체험장을 찾은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재난을 일상적인 교육으로 받아들이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학생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방재교육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구마모토는 아름다운 자연과 재난의 위험이 공존하는 도시다. 사람들은 자연을 두려워하기보다 이해하고 대비하며 함께 극복하는 길을 선택해 왔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재난을 이겨내는 공동체의 힘과 공생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도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도움을 보내는 일은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다. '고통은 함께할수록 줄어들고 희망은 함께 나눌수록 커진다.'
우정사업본부가 2012년 발행한 '희망나눔' 우표는 바로 이러한 공생(共生)의 정신을 담고 있다.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웃과 희망을 함께 나누자는 이 우표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울림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