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行
千友雲集 芝友之樂
반가운 친구 한 자리 모여, 즐거움을 함께 나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느덧 50년. 각자의 삶 속에서 바쁘게 살아온 우리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80여명의 동창들이 중국 山東省(산둥성)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 여정은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평택항이다. 700여 명의 많은 중국인 관광객과, 길게는 50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반가움이 뒤섞여 여객터미널은 옆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을 만큼 왁자지껄하다. 희끗한 머리와 주름진 얼굴 속에서도 학창 시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랜만에 이름 부르며 악수를 나누고, 웃고, 껴안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처음 맞이하는 선상 파티는 자연스레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 시절, 막걸리 한 잔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웃던 추억의 모습이 겹쳐졌다. 함께 어우러진 노래와 춤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첫날부터 이어진 흥겨움에 혹여 70을 넘긴 나이에 4박 5일의 여정에 무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스쳤다. 다행히 바다는 우리를 반겨주는 듯 잔잔하여 마치 버스를 타고 가는 듯 편안했다.
서해 바다 건너편 산둥성은 인구 1억이 넘는 큰 성이다. 성도는 濟南(지난)이며, 우리에게는 靑島(칭다오)와 煙台(옌타이)가 잘 알려져 있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칭다오는 독일의 조차지(租借地)였기에 붉은 기와의 유럽풍 건축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다. 1897년 산둥반도에 진출한 독일은 칭다오 일대를 조차하여 동아시아의 전진기지로 삼고, 다양한 독일식 시설을 지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이 이곳을 점령하게 된다. 오늘날 칭다오는 1903년 시작된 칭다오맥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5·4광장은 중국 근대사의 전환점이 된 5·4운동을 기념하는 곳이다. 이 운동은 파리강화회의에서 산둥 지역의 권리가 일본에 넘어가게 된 데 대한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땅을 왜 다른 나라에 넘기느냐”는 외침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광장에 세워진 붉은 횃불 조형물은 이러한 저항과 열정을 상징한다. 저녁 조명 쇼를 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 의미만으로도 충분했다.
칭다오 동쪽에는 국가 풍경구(국립공원)인 爐山(라오산)이 있다. 바다와 맞닿은 기암괴석의 수려한 절경과 도교의 신성한 산으로 알려진 곳이다. 라오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안개로 덮여 볼 수 없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친구들과 함께 산을 오르내리며 나눈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세월의 거리감도 ‘동창’이라는 이름 하나로 금세 사라졌다. 처음 만나는 친구조차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행 중 한국인 유학생과 조선족 학생이 다니는 대원(大元)학원도 방문하여 학교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초중고가 5-3-4학년제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였다.
여행 중 지난해 졸업 50주년 기념행사에 이어 호텔에서 간단한 기념모임도 하였다. 귀국길 선상에서 열린 마지막 여흥 시간은 특히 인상 깊었다. 우리의 노래와 흥겨운 호루라기 장단에 맞춰 중국인 관광객들까지 하나 되어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어울렸다. 언어는 달랐지만 즐거움은 하나였다.
늘 그렇듯 만남은 헤어짐의 아쉬움을 뒤로 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반세기를 돌아 다시 이어진 인연의 깊이를 새겨준 시간이었다. 넓고 깊어진 우리의 우정을 가슴에 담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중국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를 함께하는 나라다. 중국과 관련된 우표도 자주 발행되었다. 특히 독립운동과 관련된 우표가 많다. 1919년 3·1운동으로 탄생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고, 그 구심점에는 김구 선생이 있다.
선생과 함께한 윤봉길 의사가 칭다오에서 보낸 편지에는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각오하였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이 길을 떠난다는 결심이었다.”라는 글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우리 모임은 언제나 짧고 패기 넘치는 교호로 마무리한다.
파이카치 파이톤 카치무치 호치카
홀카치 파이카치 남성 남성 !!
다가올 졸업 55주년, 60주년에도 오늘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더 많은 친구들이 함께할 수 있기를, 그때도 다시 웃으며 노래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