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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비 갠 뒤, 마음의 산을 그리다
등록일 2025. 11. 28.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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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2025년 11월호 두 번째 비 갠 뒤, 마음의 산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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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비가 지나간 뒤, 인왕산의 우람한 암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을 정선(鄭敾)은 붓으로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조선의 자연이자, 정선의 마음이 담긴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38.2×79.2cm, 국보)다.

골짜기마다 피어오르는 안개는 송림(松林)을 감싸고, 묵색(墨色)은 무르녹게 어리어 윤택함을 자아낸다. 농담(濃淡)을 가려 쓴 먹빛에는 녹색이 비껴 있어 엷은 채색의 은근함을 보여주고, 안개 속에는 푸른빛이 살짝 어려 있다. 먹과 채색의 절묘한 조화가 자연의 생동감을 극대화했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관념적이고 이상화된 중국식 산수화에서 벗어나, 조선의 실제 풍경을 화폭에 담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완성한 화가다. 그의 대표작 〈인왕제색도〉는 그가 추구한 예술적 철학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서 시적이고 철학적인 깊이를 지닌다.

이 그림은 1751년, 정선이 76세의 나이에 그린 거작이다. 제목의 ‘제(霽)’는 ‘비 갠 뒤’를 뜻한다. 비가 갠 후 인왕산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인왕산(仁王山)은 338m로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러나 산 전체가 온통 화강암 덩어리로 윗부분은 거대한 암반이 송두리째 드러나 있어 누운 모습 전체가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경복궁 뒤 북악산이 주산(主山)이고, 타락산(酡酪山)이 좌청룡, 인왕산이 우백호에 해당한다.

그림의 구도는 전경과 원경이 조화를 이루며, 부감법(俯瞰法)*과 고원법(高遠法)*이 혼합되어 있다. 효자동 근처에서 바라본 인왕산은 안개가 걷히며 바위의 윤곽이 드러나고, 수목은 물기를 머금은 채 생기를 띤다. 왼편 아래 자욱이 피어오른 물안개가 길게 띠를 이루며 위로 번져나가고, 오른편 아래 기와집과 나무는 아늑하게 자리한다. 위쪽으로는 인왕산의 웅장한 바위들이 화면을 압도하고, 평소에 없던 세 줄기의 작은 폭포에서는 물이 세차게 쏟아지고 있다.

그림에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솟구치고, 쏟아져 내리고, 꿈틀꿈틀 역동적인 기운이 화면을 휘감는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묘사를 넘어,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그 속에 깃든 정선의 감정을 전달한다. 그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찰자이자, 그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시인이었다.

〈인왕제색도〉에는 마음속 깊은 울림이 담겨있다. 그의 오랜 벗이자 시인이었던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을 향한 울림이다. 사천은 진경시(眞景詩)의 거장이다. 겸재와는 시와 그림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눈 벗이었다. 겸재가 그림을 그리면 사천은 시를 붙였고, 사천이 시를 지으면 겸재는 그 시를 화폭에 담았다. 시가 가면 그림이 오고, 그림이 가면 시가 왔다. 겸재가 수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였던 것처럼, 사천 또한 무려 일만 삼천 수가 넘는 한시를 남긴 시인이었다.

그들의 교류는 조선 후기 문인화의 이상적인 협업이었으며, 예술을 통해 감정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인왕제색도는 그런 교류의 정점에서 탄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병연이 병으로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은 정선은 그의 집을 찾았고, 그 길에서 인왕산을 마주했다. 비 갠 뒤, 산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은 정선의 마음을 흔들었다. 인왕산의 바위는 묵직하게, 안개는 엷게, 그 속에는 정선의 슬픔과 걱정, 그리고 이병연을 향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체신부는 1977년, 우표취미주간을 맞아 단순한 예술작품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문화적 상징인 인왕제색도를 도안으로 한 연쇄우표를 발행하였다.

〈인왕제색도〉는 시대를 초월한 예술이다. 그것은 조선의 산천을 담은 그림이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비 갠 뒤 인왕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정선의 마음이자 우리의 마음이다. 그 산을 바라보며 우리는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자연 속에 살고 있는가?”

ㅇ 참고문헌 :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솔출판사, 2004.

ㅇ 부감법(俯瞰法), 높은 곳에서 비스듬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러 그리는 방법
ㅇ 고원법(高遠法), 높은 산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그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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