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국과 일본 미륵보살반가사유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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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4. 8.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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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佛像)은 부처의 형상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불상은 Gandhara(간다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초기 간다라에서 만들어진 불상은 그리스식 옷을 입고, 서양인의 얼굴을 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후 인도 Gupta(굽타) 왕조가 들어서면서 인도적이고 동양적인 형태로 발전한다. 불상 조각은 인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문화로 발전했다. 삼국시대 한반도에 들어왔다가 7세기 들어 일본으로 전해진다. 삼국시대 불상 예술의 극치는 단연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다. 반가는 반가부좌의 줄임말이다. 반가부좌(半跏趺坐)는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를 말한다. 사유상은 약간 숙인 얼굴에 오른손을 살짝 대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반가와 사유상의 합친 말인 반가사유상은 연화대 위에 앉아서 반가부좌 자세로 오른손으로 얼굴을 괸 채 명상하는 모습을 한 보살불상을 말한다. 반가사유상은 관음보살이나 미륵보살상에 많이 나타나며, 금동이나 돌, 나무, 흙으로 만들어져 법당 안에 안치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국보 제78호와 제83호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상설 전시 중인 제78호 반가사유상은 화려한 조각을 한 관을 쓰고 장식띠를 늘어뜨린 모습이고, 제83호 반가사유상은 단조로운 모습이지만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우리 국보 제83호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일본 국보 京都(교토) 広隆寺(고류지)의 彌勒菩薩半跏像(미륵보살반가상, 宝冠弥勒)은 양국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국가유산으로 서로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두 상은 표정이나 옷 주름 표현에는 약간 차이가 있으나, 삼면관의 보관, 가슴과 허리의 처리, 허리띠의 장신구 등이 매우 비슷하다. 우리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또는 7세기 초에 금동(높이 93.5cm)으로 제작되었다. 머리에 둥근 산 모양의 관(三山冠)을 쓰고 있다. 얼굴은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고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고, 목에 2줄의 목걸이가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꽃무늬 대좌(臺座)를 밟고 있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왼손으로는 오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하반신을 덮은 치맛자락은 매우 얇게 표현하여 신체 굴곡이 잘 드러난다. 연꽃무늬 대좌를 덮은 옷자락은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단순하면서도 균형 잡힌 신체 표현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 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으로서의 완벽한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잔잔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반가상의 자비로움은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준다. 일본 고류지 미륵보살반가상은 일본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飛鳥(아스카)시대 7세기 초 목조(높이 123.3cm)로 제작되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올리고 앉아 있으며, 오른손을 볼에 가볍게 대고 반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부적인 표현이 뛰어나며 우아한 곡선에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조형미와 섬세한 조각이 돋보인다. 보살의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띠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이 장식되어 있으며, 옷의 주름과 몸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어 단정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재질이 우리나라 경상도에 많은 적송(赤松)으로 한반도에서 제작되었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1969년 처음 보통우표에 담긴 후 여러 차례 우표로 발행되었다. 1995년에는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과 일본이 교류와 협력을 증진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 수립을 기원하면서, 양국 불교문화 교류를 상징하는 일본 고류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공동 기념우표로 발행하였다. [참고문헌]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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