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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조들의 얼과 문화 도래솔
등록일 2019. 8. 6.
첨부파일 up20190806140248249.jpg
77. 선조들의 얼과 문화 도래솔
 

  명절에 성묘하러 산소에 가보면 주위에 소나무가 심었거나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덤가에 있는 소나무를 도래솔 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후손들의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왕릉 같은 무덤가에 소나무가 없고 휑하면 어떨까 상상하는 분도 없지만 상 상을 하면 돌아가신 분에대한 예의가 아니고 문화재로서 가치가 떨어지고 말도 안되는 것 같다. 도래솔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소나무룰 타고 하늘로 오른다는 말도 있으며, 도래솔을 베면 집안이 망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래솔의 어원은 원래 ‘도래’ 라는 말은 ‘둘레’ 에서 비롯된 말로 다른 말에 덧붙어 ‘돌아가게 되어있다’, ‘둥글다’ 는 뜻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옛날의 혼인 때 둥 글넓적하고 큼직하게 만들어서 초례상에 놓는 흰 떡을 ‘도래떡’이라고 하고,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은 ‘도래샘’ 이며, ‘도래상’, '도래방석‘도 있다. 그런 뜻으로 무덤을 둘러싸고 둥글게 늘어선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과 도래솔 숲. 권력자의 무덤일수록 도래솔은 두껍게 심는다. 서울 근교의 왕릉을 가보시면 도래솔은 일곱 겹이 아니라 아예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그리고 영월 단종 능의 도래솔은 전설로 유명하다. 그곳 문화해설가들은 단종의 애절함을 알고 모든 소나무들은 단종을 향하여 읍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생태적으로는 소나무가 능 쪽으로 공간이 비니까 그쪽으로 가지가 커나가서 빈 공간 즉 능쪽으로 기울어진 것인데 스토리를 담아서 이야기 하면 더 욱 재미가 있다 간혹 무덤에 어마어마한 석물 장식이나 향나무에서 일본철쭉까지 의미도 없는 나무를 함부로 심어 호사스런 공원처럼 꾸며 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죽은 이를 위함이 아니라 살아있는 후손의 부를 과시하는 것 같다. 지나친 무덤치장은 이 시대 자랑이 아니라 욕먹 일을 수가 있다. 간소하게 무덤주변에 도래솔로 이승과 저승을 갈라놓은 가리개의 의미로 생각 하였으면 한다.

  

기록에 보면 무덤의 주위에는 둘레나무를 심는다. 조선왕조 때 왕릉에는 송백(松柏)을 심었다 는 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소나무와 측백나무도 심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의 예에 따른 것이다. 베이징 명13릉에 심겨진 측백나무 숲.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국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무덤은 양지바른 야산에 만들었다. 이 때문에 좀 건조해도 별로 개의치 않고, 햇빛도 좋아하는 소나무를 많이 사용했다. 무덤의 ‘둘레 솔나무’ 가 줄어 ‘도래솔’ 이 됐다. 무덤 주위에는 숲과 경계를 지우고 무덤을 보호하기 위하여 언제부터 둘레나무를 심기 시작했 을까? 이와 관련해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에 도래솔에 얽힌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고구려 9대 고국천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왕비 우씨는 둘째 시동생 연우를 도와 10대 산상왕 에 오르게 한다. 우씨는 상산왕에게 개가해 또 왕비가 됐다.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왕비를 두 번 한 셈이다. 고국천왕의 왕비로 18년, 이어서 다시 산상왕의 왕비로서의 30년을 합쳐 두 임금 48년에 걸쳐 ‘퍼스트레디’ 라는 영광을 누린다. 세월이 흘러 아들인 11대 동천왕 8년(234)에 그녀도 죽음을 맞는다. 그녀는 죽으면서‘지하에서 고국천왕을 만날 면목이 없으니 산상왕릉 옆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얼마 후 고국천왕의 혼백은 나라의 유명한 무당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 한다. ‘우씨의 혼백이 산상왕에게 가는 것을 보고는 분함을 참을 수 없어서 마침내 우씨와 다투었다. 백성 보기에 민망하니 나의 무덤 앞을 막아버리는 가리개를 만들어 달라.’무당이 동 천왕에게 이를 알려서 고국천왕의 능 앞에는 자그마치 일곱 겹으로 소나무를 심었다고 알려진 다. 개가해버린 아내를 살아서도 어쩔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귀신이 돼서야 어찌 첫 남편으 로서의 연고권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 서운하고 분하더라도 선택은 현명해야 한다. 어차피 막을 명분도 권력도 없어진 ‘귀신 고국천왕’ 은 소나무 일곱 겹의 도래솔 가리개로 우씨의 행태를 아예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도록 부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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