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樓亭)은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높여 지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누정 건축은 정자, 누(樓), 대(臺), 각(閣), 당(堂), 헌(軒) 등의 여러 종류의 건축을 통칭하여 부르는 용어로서 선조들이 휴식하고 사색하며 주변의 경관을 완상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건축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정은 자녀들과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자 문인들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누정은 경관이 좋은 곳에 세우거나 누정을 세움으로써 경관이 좋아지는 곳에 많은 누각이나 정자를 건립하였다. 누각은 개인성보다는 공공시설로서 그리고 지역 단위의 특성을 반영하여 규모와 규범이 고급 건축구조와 의장을 요구하는 반면, 정자는 사생활의 일면을 담당하는 건축물로 구조·규모·의장의 융통성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공간을 형성하였다. 누정은 삼국시대의 궁궐 건축에서는 필요한 요소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궁궐만이 아니라 관아, 사찰, 서원이나 향교 그리고 일반 사대부의 주택에 이르기까지 즐겨 만든 건축물이 되었다.

누정의 기능은 규모가 큰 누각은 첫째 공식적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이고, 둘째 사람들이 출입하는 문루(門樓)의 장소이며, 셋째 경치를 즐기고 감상하는 장소였다. 정자는 첫째 주위 자연 경관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고, 둘째 선비들의 풍류와 친교의 공간이며, 셋째 학문과 교육의 공간이고, 넷째 종중이나 마을 사람들의 모임이 열리는 장소였다. 누정은 주로 휴식의 의미가 강하게 내재하여 있었기 때문에 절경에 독립된 단일 건물로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정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시도 읊고 가객을 불러 노래도 감상하던 공간이다. 또한 누정은 주로 개인적 수양을 위한 풍류 기능, 교육을 위한 강학 기능, 조상숭배를 위한 종교 기능, 지역적인 계모임 등의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특히 누정은 자연 속에서 한국의 전통적 사상과 정신이 잘 깃들어 있고 선비들의 사유 공간으로 선비문화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특히 정자가 세워진 곳은 강한 장소성을 나타낸다. 그 건립된 장소를 보면 강이나 계곡, 연못, 산마루나 언덕, 주택의 안이나 마을 어귀 등에 세워진다. 누정은 온돌방이 없고 마루만으로 구성된 경우와 방과 마루를 함께 갖춘 경우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마루의 기능성이 강조된다. 즉 거주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휴식이나 오락, 또는 교육 등 자연을 배경으로 다양한 활동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따라서 누정에서 보이는 경관은 매우 중요하며, 누정 안에서 경관을 조망할 때 누정은 자연의 한 요소로서 작용하게 된다. 누정은 재실, 별서, 종회소, 향약 시행처, 종교의식 등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누정을 세울 때는 음양오행, 풍수지리, 배산임수의 입 지관 등이 고려되는데, 자연 그 자체를 완상하는 기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성의 도야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놀거나 휴식할 장소로 산수 좋은 높은 곳에 세우는데 정각(亭閣) 또는 정사(亭擄)라고도 한다. 사(擄) 또한 높은 언덕, 혹은 대 위에 건립한 집으로 정자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누정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 속의 살림집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유람이나 휴식 공간으로 가옥 외에 특별히 지은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각과 정자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누정은 보편적으로 피서(避署)와 유락(遊樂), 시단(詩壇), 산수경관의 조망 등을 위하여 산수가 좋은 장소에 조영되는 간단한 건축물을 말한다. 누정은 많은 사람들의 시적 교유 현장임과 동시에 그 사회를 이끄는 담론이 형성되었던 곳이고, 후학을 양성하는 강학 공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고려시대부터 생겨나, 조선시대에 발전해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문화의 큰 흐름이다. 누정의 유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 주체에 따라 몇 개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궁궐의 누정. 관아의 누정. 서원의 누정. 사찰의 누정. 사대부의 누정이다. 그리고 누정의 명칭이 생기게 된 유래는 자연과 관련된 명칭과 자연의 풍월 · 구름 · 비 등에서 연유된 이름과 동식물과 연관된 경우와 인물의 호칭과 관련된 명칭도 있으며 특이한 것은 세검정(洗劍亭)은 인조반정 때에 김류(金瑬) · 이귀(李貴)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씻어 칼집에 넣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