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선은 우리말로 쥘부채라고도 하는 접을 수 있는 부채를 말한다. 원형으로 펼쳐지며 햇볕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던 대륜선, 선면을 글씨나 그림으로 장식한 서화선, 선비들이 사용하는 접선을 뜻하는 한림선 등 접선은 부챗살의 수나 장식, 사용자의 신분 등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갖는다. 펼쳐서 바람의 숨결을 일으키고 접어서 바람의 숨결을 잠재우는 접선은 그 모양이 힘찬 나비의 날갯짓을 닮았다. 그래서 접선을 통해 부는 바람은 더욱 단단하고 묵직하다. 180도로 활짝 펼쳐지는 접선은 우리나라 부채만의 특징인데, 50개의 살을 만들기 위해 100번을 접어야 하므로 ‘백접선’이라고도 하였다. 부채를 만드는 장인을 선자장이라고 부르며 부채 종류도 다양하다. 부채는 필수품이었다. 여름이 들어서는 길목인 단오를 맞아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대나무의 겉대를 두 겹으로 붙여 만든 합죽선은 인기가 가장 좋았다. 옛 선비들은 합죽선을 쥐어야 비로소 외출했을 정도로 대나무의 올곧음과 한지의 청량함을 담고 있는 합죽선은 조선시대 애용되던 부채였다.
반원형으로 펼쳐지는 접선은 가끔 도화지를 대신하기도 했다. 옛사람들은 그 공간에 시와 그림으로 안부를 전하기도 하며 접선을 펼쳐 마음을 전했다가 접어서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도 했다. 이것이 접선이 가진 펼침과 접힘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전국에서도 전주 부채는 특히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담양, 남원 산내, 함양 등 인근에서 질 좋은 대나무가 많이 난 덕에 재료 수급이 원활히 이루어지며 부채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여기에 닥나무가 자라기 좋은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어 종이의 질이 우수했으니 여러모로 부채 만들기에 좋았다. 조선시대에는 제주도, 전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에 선자청을 두고 부채의 제작과 관리를 통솔했다. 전주 부채는 연례행사로 조정에 납품되었으며, 임금이 신하들에게 전주 부채를 하사하기도 했다. '완산부지도 십곡병풍' 안의 전라감영 지도를 보면 당시 선자청의 위치와 규모를 알 수 있는데, 16칸의 큰 규모로 상당히 큰 규모이며 한지를 만드는 '지소'도 있어 부채 만들기에 최적의 시스템으로 전국적으로 공급했다.
단선은 접을 수 없는 손부채 형태로 왕실 행차할 때 사용하는 의장기와 같은 의장용 단선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손부채 형식인 일반형 단선이 있다. 의장용 단선은 일상이 아닌 궁정이나 신선을 묘사하였던 상고적 회화류에서 확인되는 경우가 더 많다. 궁인이나 시인들이 왕공이나 신선들을 뒤에서 호위하며 들고 있는 기물 중에서 우산이 아닌 선이 있는데 이 중에서 면은 평평하지만, 그 형상이 사각이나 원형인 물건을 말한다. 현재 경희궁과 경복궁 등 궁궐의 정전에 전시된 임금의 행차에 사용된 청선 용선, 봉선이 그 사례이다. 일반형 단선이란 보통의 부채를 말한다. 조선 초기만 해도 단선은 접선에 비하여 높은 신분과 계급이 귀하게 여기던 비싼 부채였다. 이 단선의 종류는 주로 모양에 따라 구분된다. 오동이나 연 그리고 파초의 형태를 따서 오엽선, 연엽선, 파초선이라 하였다. 부채의 재료로 구분할 때는 진주로 장식한 혼례용의 진주선, 공작 깃털로 만든 공작선, 부들로 짜서 만든 부들부채 등이 있다. 단선은 원선·둥글부채로도 불리며, 이 외에도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미선이란 별칭도 있다. 그려진 문양과 색에 따라 태극선·색선(청선, 홍선 등)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다양한 색과 문양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부채를 팔덕선이라고 한다. 비를 가려 젖지 않게 해주는 덕. 파리나 모기를 쫓아주는 덕. 땅바닥에 앉을 때 깔개가 되어주는 덕. 여름날 땡볕을 가려주는 덕. 방향을 가리킬 때 지시봉의 구실을 하는 덕. 사람을 오라 할 때 손짓을 대신하는 덕. 빚쟁이와 마주쳤을 때 얼굴을 가려주는 덕. 남녀가 내외할 때 서로 얼굴을 가려주는 덕. 이 여덟 가지 덕은 전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만큼 부채의 용도가 다양하다. 부채는 우리말을 손으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의 ‘부’ 자와 가늘게 오린 나무 등의 기다란 물건이라는 뜻인 ‘채’ 자가 더해진 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한자어로는 ‘선자’라고 한다. 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선자장이라 칭하며 조선시대에는 경공장으로 공조에 접선장 4인, 원선장 2인이 있었고, 경상도에 선자장 6인, 전라도에 선자장 2인이 배속되어 부채를 만들었다. 부채는 단순해 보이지만, 숙련된 장인의 손길을 수백 번 거쳐야만 완성된다. 곧은 대나무를 정교하게 깎아내고 균형에 맞춰 부챗살을 다듬어 한지를 바르는 것까지. 어느 하나 손길이 닿지 않는 과정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