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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콘텐츠는 한국 우편에 대한 역사를 소소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제목 또다시 파문을 일으킨 독도우표
등록일 2014. 4. 30.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우표는 한 나라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국가적
으로 중요한 행사나 인물을 도안의 소재로 삼게 된다.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 예술, 자연, 동물과 식물
등을 우표에 담기도 한다. 그처럼 자기 나라 중심으로 우표를 발행하다 보면, 때로는 우표가 다른 나라와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표가 국가 간에 말썽을 일으킨 것은 대부분 영토를 소재로 삼은 경우였다.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간의 전쟁이 그렇고, 도미니카와 아이티 간의 전쟁이 그렇다. 전쟁에까지 이르진
않았으나 한 나라에서 발행한 우표가 이웃나라와 말썽을 일으킨 사례도 종종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발행한 독도우표도 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었다.
우표가 국가 간의 전쟁을 일으킨 첫 번째 사례는 도미니카와 아이티 간의 전쟁이었다. 도미니카와
아이티는 서인도제도에 있는 섬 에스파뇰라를 양분하고 있는 섬나라였다. 1900년 도미니카 공화국이
에스파뇰라 지도를 그린 우표를 발행하면서 아이티 국토의 일부를 도미니카 영토에 편입시켜 도미니카
땅을 크게 그렸다. 이에 분노한 아이티가 시정을 요구했으나 도미니카가 듣지 않자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이 중재에 나섰으나 전쟁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30년이나 계속된 전쟁은 1929년 미국 등의
중재로 제대로 된 국경선을 넣은 지도우표를 발행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라과이와 볼리비아가 전쟁을 일으킨 것도 우표 때문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볼리비아가 차지하고 있는 땅 그란차코 지방에서 석유가 나면서 비롯되었다. 초원지대인 그란차코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파라과이가 192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파라과이령 차코’라는 글자를 넣은 지도우표를
발행했다. 이에 맞서 볼리비아가 1928년 ‘볼리비아령 차코’라는 글자를 넣은 지도우표를 발행한 데 이어,
1931년에는 ‘차코 볼리비아’라 명기한 지도우표를 24종이나 발행했다. 지도우표로 촉발된 양국 간의 감정
싸움은 결국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4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먼저 우표를 발행한 파라과이의 승리로
끝났고, 문제의 땅 그란차코는 파라과이의 영토가 되었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독도우표는 세 차례 발행되었다. 맨 처음 발행한 독도우표는
1954년 9월 15일에 발행한 2환, 5환, 10환짜리 3종이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돌섬 독도의 모습을 담은
보통우표였다.
이 우표가 발행되자 일본이 강하게 반발했다. 일본 언론은 이를 ‘폭거’라 규정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일본 정부는 독도우표의 발행을 “한국 정부가 일본 영토에 대한 억지 주장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며
항의했다. 또한 독도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금제품(禁制品)으로 간주해 일절 배달하지 않고 한국으로
반송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정국장 최재호가 이에 맞서 우표는 관세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일본이 관세법 규정을 들어 반송하는 것은 만국우편조약에 위배되므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일본은 관세법을 개정하려던 방침을 철회하고 편지봉투에 붙은 독도우표를 까맣게
먹칠해 배달했다. 까맣게 먹칠한 모습이 흉해 보이자 우표를 떼내 배달하기도 했다. 한때 한ㆍ일간에
뜻하지 않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던 독도우표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1954년 9월에 발행한 독도우표 3종
두 번째로 내놓은 독도우표는 2002년 8월 1일에 발행한 특별우표였다. 이 우표는 ‘내 고향 특별우표’라는
이름으로 전국 16개 지방에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 내지 전통 풍물 2종씩을 골라 우표에 담은 것으로
독도우표는 안동 차전놀이와 함께 경북의 대표로 선정되었다. 한꺼번에 32종이나 되는 ‘내 고향 특별
우표’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90만 장이나 발행되었음에도 일본은 이 우표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는 2004년 1월 16일에 내놓은 190원짜리 기념우표 4종이었다. ‘독도의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발행
된 이 우표는 독도에서 자생하는 갯메꽃과 왕해국, 그리고 그곳에 서식하는 슴새와 괭이갈매기를 4종
연쇄로 인쇄했다. 우정사업본부는 2004년부터 우리나라 명산의 4계절과 섬의 상태계를 소개하고 그
보존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시리즈우표 발행계획을 수립했는데, 그 첫 번째 우표로 독도우표를 발행
했던 것이다.
이 우표는 발행되기 전부터 그 사실이 알려져 일본으로부터 발행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고, 일단 발행
되고 나자 일본 정부와 언론이 한 목소리로 불만을 표시했다.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다케시마
(竹島)는 일본 영토”라며 생떼를 썼고, 총무상 아소 다로는 “일본도 독도우표를 발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일본의 우익단체는 선박을 이용하여 해상 시위를 벌이며 독도 상륙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자극받은 양국 국민이 찬반 의견을 쏟아내며 맞선 바람에 단순한 우표 발행이 양국 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하려 했다.
우정사업본부 경영총괄과 서기관 김윤기가 우편사업단 우표실장으로 부임한 것은 2003년 5월이었다.
2000년 7월 우정사업본부가 발족한 이래 경영기획실에 근무하며 새로 발족한 우정사업본부의 터전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다 서기관으로 승진한 뒤 첫 보직으로 발령받은 자리가 바로 우표실장이었다. 우정
사업본부 과장 자리를 맡은 것은 처음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한 달쯤 뒤 외교통상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서기관 모씨라 했다. 내년도 우표 발행계획에 독도
우표가 들어 있는 게 맞느냐고 묻는 전화였다. 실무자에게 확인한 결과 이듬해 우표 발행계획에 독도
우표가 들어 있는 게 틀림없기에 그렇다고 했다.
“그 우표를 내년도에 반드시 발행해야 합니까?”
상대방은 약간 부정적인 어투로 물었다.
“그럼요, 발행해야죠. 내년도 우표 발행계획에 독도우표가 들어 있고, 이미 발행하겠다고 발표까지 했는
걸요. 특히 ‘코리아 스탬프 리뷰(Korea Stamp Review)’라는 영문 우표지를 통해 대외적으로도 공표했기
때문에 발행해야 합니다.”
김윤기는 자신있게 말했다. ‘코리아 스탬프 리뷰’란 우표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발전상 등을 해외에 소개
하는 영문 잡지였다.
“내년도 발행계획에 들어 있다 해서 반드시 계획대로 발행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정에
따라서는 수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게 계획 아닙니까?”
상대방은 여전히 부정적인 어투로 말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내년도 우표 발행계획은 이미 지난 3월에 확정됐고, 그 사실은 이미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런 계획을 어떻게 변경합니까?”
김윤기는 목소리에 열을 올리며 공박했다. 당시는 이듬해의 우표 발행계획을 미리 수립하여 전년도
3월에 우표발행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짓기 때문에 우표실장이 발행계획을 취소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처럼 중요한 문제를 왜 저희 부처와 협의도 하지 않고 결정하셨죠?”
“아니, 독도우표 발행하는 것까지 외교통상부와 협의해야 합니까?”
김윤기는 목소리를 높이며 따졌다. 그처럼 둘 사이의 대화는 어느덧 입씨름으로 번지고 있었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언성을 높이긴 했으나, 알고 보니 외교통상부 담당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독도에 관련된 정책을 추진할 때는 관련 부처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었다. 독도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는 어느 부처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그 같은 방침을 정했던 것이다. 또한 영토 문제를 놓고 두 나라가 다툴 경우, 국제법은 실질적
으로 그 지역을 50년 이상 지배한 나라의 소유로 인정한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었다. 때문에 50년
가까이 독도를 지배해온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 문제를 가지고 말썽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그렇다 해서 이미 발행하기로 결정하고 공표까지 한 독도우표의 발행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일본의
반발이 두려워 독도우표 발행을 취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겪게 될 국민적 저항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었다. 우정사업본부 우표실은 계획대로 독도우표를 발행하되, 가급적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추진
하기로 했다.
독도우표의 발행 예정일은 2004년 1월 16일이었다. 독도우표 발행은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우표의
인쇄는 완료되었고, 판매될 우표는 체신청을 거쳐 각 우체국으로 배포되었다.
2004년 1월에 발행한 독도우표 4종
발행일을 8일 앞둔 1월 8일 아침, 통근버스에서 단잠을 즐기고 있던 우표실장 김윤기는 휴대전화에
수없이 찍어 있는 사무실의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급한 일이 터진 것을 직감한 그는 곧바로
사무실로 달려갔다.
“큰일 났습니다. 일본우정공사에서 독도우표 발행 사실을 알고 기자회견을 열고 발행 중단을 요청
했다는데, 그 기사가 연합뉴스에 뜬 모양입니다. 그 기사를 보고 출입기자들이 독도우표가 언제 발행될
것이냐며 빨리 알려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빨리 알려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우표실 실무자 백용운이 급히 보고했다.
책상 앞에 앉자마자 정보통신부 공보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독도우표를 발행하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오전 10시에 정보통신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으니, 와서 설명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오전 10시, 정보통신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우표 발행은 해당국 우정청의 고유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오는 16일 발행 예정인 ‘독도의 자연’ 우표에 대해 일본이 발행 자제를 요청해 왔었습니다.
외교통상부와 협의하고 내부 검토를 한 결과 만국우편엽합(UPU) 협약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예정
대로 우표를 발행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다음 주 중으로 그 내용을 일본우정공사와 총무성에 공식
서한으로 발송할 계획입니다.”
우편사업단장 박재규가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전해 8월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영토 분쟁지역인 독도에 한국 정부가 우편번호를 부여
하고 우체통을 설치하며 우표 발행을 추진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외교통상부에 항의 서한을 보내온 바
있었다. 이어 9월에는 일본 총무성이 독도우표 발행을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일본 총무성은 일본우정공사의 감독기관이었다.
우정사업본부가 독도우표를 예정대로 발행하겠다고 발표하자, 일본 총무상 아소 다로는 일본도 독도를
주제로 하는 우표 발행을 검토해야 한다며 외유 중인 일본 외무상이 귀국하는 대로 협의하겠다며 맞불을
놓으려 했다. 수상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이에 가세해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다. 무슨 이유로 다케시마
우표가 나오는지 사정을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처럼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긴 했으나, 일본은 독도우표를 발행해 맞불을 놓는, 과격한 행동은 자제
했다. 일본 총무성차관 야마구치는 “한국우정공사의 독도우표 발행에 대해 냉정하게 대응하겠다.
유감이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대응조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일본우정공사는
경영이 가장 중요한데 팔리지도 않을 우표를 발행할 필요는 없다며 실리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독도우표는 발매를 시작하기 전부터 인기를 예고했다. 독도우표 발행을 중지해 달라는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한국과 일본의 네티즌 사이에 사이버전쟁이 벌어졌고, 이에 따라 양국 국민 간의 감정 대립이
격화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독도우표에 집중되고 있었다.
우체국에는 독도우표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문의 전화가 연일 빗발쳤다. 우체국 계좌에 일정한 금액을
예치해 놓고 우표를 주문하는 우표통신판매 계좌가 며칠 사이에 부쩍 늘었다. 우정사업본부는 우표를
구입하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대혼잡을 이룰 것으로 예상하고, 한 사람이 많은 우표를 구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1인당 구입 매수를 전지 2장까지로 제한했다.
독도우표는 예정대로 1월 16일에 발매되었다. 전국의 2820개 우체국에서 오전 9시부터 우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 우표를 구입하려는 인파가 우체국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3시간 뒤인 낮 12시,
판매 중인 우표가 바닥났다. 서울중앙우체국과 여의도우체국의 경우, 발매한 지 30분 만에 배정된 물량이
모두 팔렸고, 광화문우체국에서는 오전 10시 25분경에 매진되었다.
독도우표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광화문우체국 창구에서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총 발행량 224만 장 중에서 우표책 및 우표첩 제작용과 해외판매용, 기증용 등으로 필요한 36만 6000장을
뺀 187만 4000장을 전국 우체국에서 판매했던 것인데, 그 많은 수량이 불과 3시간 만에 매진되었던
것이다. 1인당 구매 수량을 전지 2장까지로 제한했기에 1인당 구매 수량을 전지 1장으로 계산한다면 최소
11만 명 이상이 그 날 독도우표를 구입했던 것이다. 그만큼 독도우표를 사려는 국민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아니, 독도우표 발행을 저지하려는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강렬했다 하겠다.
독도우표가 발행되자 일본은 외상 가와구치 요리코가 직접 나서 항의했다. 그는 주일대사 조세형을
외무성으로 불러 “독도는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일본 정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
중지 요청을 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도우표를 발행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또 국가
간의 분쟁의 대상을 우표 도안의 소재로 삼은 것은 국제협력을 주창하는 UPU 현장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그 내용을 UPU 사무국을 통해 회원국에 전달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일대사 조세형은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상 한국의 고유 영토이므로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
하고, 이 문제가 양국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일본의 신중한 대응을 촉구한다고 맞섰다.
그처럼 말로만 엄포를 놓았을 뿐 일본은 독도우표를 발행하지도 않았고, 독도우표를 붙여 일본으로 보낸
편지를 반송하지도 않았다. 다만 일본인이 신청한 ‘나만의 우표’ 3종의 발행은 허용했다.
한국에서 독도우표가 발행되고 나서 한 달쯤 지나 일본의 도쿄학예대학 교수가 독도 사진에 “다케시마는
우리나라 고유 영토다”라는 문구를 넣은 우표 1만 시트(우표 10만 장)를 발행해 달라고 신청했으나 일본
우정공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총무성ㆍ외무성과 협의한 결과 우표 도안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기에 거부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강력하게 항의하며 총무상에게 독도를
소재로 한 개인우표의 발행을 허용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일본우정공사는 그처럼 정치색을 띤 ‘나만의 우표’의 발행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그 해 1월부터 독도
사진이 새겨진 ‘나만의 우표’가 세 차례나 발행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독도를 소재로 한 ‘나만의
우표’를 발행한 장본인은 도쿄의 한 우표ㆍ동전수집가였다. 우표의 도안은 독도를 항공촬영 한 사진 밑에
독도의 일본명인 ‘죽도(竹島)’와 영어로 ‘TAKESHIMA’라는 문자를 새긴 것이었다.
이 우표는 처음 1월 23일에 발행된 데 이어 1월 29일과 2월 19일 두 차례 더 발행되었다. 50엔, 80엔,
90엔짜리 우표 3종으로 모두 36시트(360장)가 만들어졌다. 첫 우표가 나온 것은 한국에서 독도우표가
발행된 지 1주일 만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우정공사는 “외교 현안과 관련된 사진을 우표에 넣는 것은
적절치 않은 만큼 거부했어야 하는데, 직원들이 단순히 풍경 사진으로 생각해 발행한 것 같다.”며
업자에게 독도우표를 회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일본에서 발행된 독도우표
한편 일본은 그 해 2월 한국의 독도우표 발행을 비난하는 성명을 UPU를 통해 190개 회원국에 전달했다.
다케시마는 한국이 불법 점거한 일본 영토이므로 독도우표를 발행한 것은 UPU 회원국들이 우표를
발행할 때 국민간의 유대와 우호를 증진하고 세계 평화를 증진하는 주제를 선택할 것을 권고한 UPU
헌장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역사적 증거와 지리학적 사실, 국제법의 원칙으로
볼 때 독도는 한국의 영토가 분명하며, 한국 정부는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한국의 주권에 대한 중대한
위반임을 줄곧 강조했다.”고 밝혔다.
독도우표 발행을 거부한 데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던 자민당 의원들은 ‘나만의 우표’ 발행을 허용하라고
압력을 가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나만의 우표’ 발행을 직접 신청했다. 자민당
내의 보수파 의원들로 구성된 ‘국가기본정책협의회’ 회원들은 3월 5일 도쿄중앙우체국을 방문하여 독도
사진을 담은 우표의 발행을 신청했다. 독도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북방 섬과 중국과
말썽을 빚고 있는 센카쿠열도를 담은 우표도 동시에 신청했다. 우표의 도안은 해당 섬의 사진과 그림을
배경으로 ‘일본국 다케시마’ 등의 문자와 일본 국기인 히노마루를 담고 있었다. 일본우정공사는
2003년부터 얼굴 사진이나 풍경 등이 들어간 우표를 고객의 주문을 받아 발행해 주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일본우정공사는 외교상 문제가 있다며 발행을 거부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주장이 거세게 일자, 북한이 슬그머니 독도우표를 발행했다. 소형전지 1종과
우표 3종, 부표 1종으로 구성된 묶음전지 1종의 우표였다. 소형전지 왼쪽에는 18세기 초의 조선8도
전도가, 오른쪽에는 독도의 등대 사진이 담겼고, 묶음전지에는 18세기 초의 조선8도 전도와 독도의 서도
및 동도 사진이 담겨 있었다. 한국이 독도의 자연을 소재로 우표를 발행한 데 비해, 북한은 ‘조선의 섬 독도’라는 제목으로 한반도의 지도와 독도의 사진을 담음으로써 독도가 예로부터 한반도의 땅이었음을
강조하고자 했다. 또한 소형전지와 묶음전지의 왼쪽 상단에 제주도와 울릉도, 독도까지 그려 넣은
한반도기를 앉힘으로써 한국의 독도우표 발행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우표를 발행하기에 앞서 북한은 ‘중앙통신’의 논평을 통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새해 첫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군국주의 부활의 기도를 드러내 보인 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떠든 것은 조선에 대한 재침략의 책동을 적극 추진하려는 음흉한 속셈의 발로”라고 비판한 바
있었다.
북한에서 발행한 독도우표
2004년 4월 18일 북한 조선우표사가 발행한 이 우표는 조선우표사로부터 세계 총판매권을 위임받은
홍콩의 고선필름이 판매했는데, 정부는 이 우표의 국내 반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우표에는 ‘조선의 섬
독도’라 쓰여 있어 자칫 독도가 북한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처럼 북한까지 나서서 한바탕 소동을 피운 끝에 독도우표 문제는 잠잠해 졌다.
알립니다.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은 필자의 개인적인 사정에 의하여 당분간 쉽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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