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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콘텐츠는 한국 우편에 대한 역사를 소소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제목 독일에서 온 우편물은 과학편 프랑스에서 온 우편물은 종교편
등록일 2015. 9. 22.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수취인 명단을 광화문우체국 벽에 붙여놓고 찾아가게 하다

조선 정부가 오랜 기간 쇄국주의 정책을 고수하다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밖으로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정부의 자의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열강의 강요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외국과의 관계에서도 한국인의 해외 진출보다 외국인의 국내 진입이 일방적으로 많았다. 국제우편 역시 처음부터 내국인보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 거류민의 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국제우편은 1905년 한일통신기관협정의 체결로 일본이 우리나라 통신기관을 운영하게 된 이후부터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는데, 일본인 거류민이 갈수록 늘어나고 그들의 우편 이용이 증가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식민지 초기의 국제우편은 주로 한국과 일본 양국 간에 이루어졌다. 한반도를 통치하게 되자, 일제는 한국과 일본 간에 왕래하는 우편물에 국내우편요금을 적용하며 국내우편물로 간주했다. 그러나 문자가 다른 우편물을 배나 항공기로 운송하고 낯선 외국어를 번역해 가며 배달해야 하기에 국제우편물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 외에 국제우편을 자주 이용하는 외국인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구미인이었다. 1909년 3월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체국에 등록된 구미인의 숫자가 600여명이나 되었다. 그처럼 국내의 각 우체국에서는 관내에 거주하는 구미인의 주소록을 작성해 놓고 우편물을 정확히 배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제시대 가장 많이 접수된 국제소포우편물은 인삼이었다

우리나라 국제우편이 제대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20년대 이후였다. 1920년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제7차 만국우편연합(UPU) 총회에서 한국은 단독 우정청 자격을 얻었는데, 그 뒤 국제우편물 교환국 수가 대폭 증가했다. 1920년대는 3ㆍ1만세운동에 대한 반성으로 일제가 소위 문화통치(文化統治)로 전환한 시기였는데, 그 결과 식민통치가 안정되면서 국제우편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용되었다.

당시에도 한국과 가장 많은 우편물을 교환하는 나라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식민지임을 이유로 한국과 오가는 우편물에 국내우편요금을 적용하며 국제우편물로 취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국제우편물을 가장 많이 교환하는 나라는 중국이고, 다음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었다.

서울에서도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경성우편국(지금의 서울중앙우체국)은 우리나라에서 국제우편물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우체국이었다. 당시는 국제우편물의 이용이 흔하지 않을 때여서 경성우편국 등 몇몇 우체국에서만 국제우편물을 취급했다. 경성우편국은 국내에서 발착하는 국제우편물 중 보통통상우편물의 36%, 특수통상우편물의 60%, 소포우편물의 54%를 취급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교환하는 국제우편물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1930년 1년 동안 경성우편국에서 취급한 국제우편물 중 통상우편물은 81만 3973통이었는데, 그 중에서 중국이 74만 9534통으로 92%를 차지했고, 다음은 미국으로 4.3%인 3만 5412통이었다. 3위인 영국은 1만 2498통으로 1.5%에 불과했다. 통상우편물의 경우, 그처럼 중국과의 교환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의 비중은 무시할 정도였다.

소포우편물의 경우 각국의 비중에 꽤 차이가 났다. 그 해 경성우편국에서 취급한 소포우편물은 총 1만 5747통이었는데, 그 중에서 중국이 7379통으로 47%, 미국이 5767통으로 37%를 차지했다. 소포우편물의 경우 그처럼 미국의 비중이 크게 높았다. 다음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였는데, 그들 나라의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홍콩이나 해협식민지 등 동남아시아 국가였다.

경성우편국에서 취급한 소포우편물을 발송우편물과 도착우편물로 나누어 보면, 그 비율이 지역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구미지역의 경우 발송우편물에 비해 도착우편물이 일방적이라 할 만큼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에 중국, 홍콩이나 해협식민지 등 아시아지역은 도착우편물에 비해 발송우편물이 훨씬 많아 구미지역과 아시아지역 간의 소포우편물의 교환 비율이 매우 대조적이었다.

1915년에 신축한 경성우편국

당시 경성우편국에서 접수한 소포우편물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우리나라 특산품인 인삼류였다. 1932년에 접수한 소포 중 홍삼, 백삼 등 인삼류는 2177개로 그 포유가격(包有價格)이 자그마치 28만 원이었다. 이는 경성우편국에서 접수한 소포우편물 가격의 90%나 되는 것이었다. 그들 인삼의 행선지는 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이후에는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일화(日貨) 배척운동을 맹렬히 전개했기에 중국행 인삼 소포가 대폭 감소했다.

일제시대 경성우체국에서 취급했던 국제우편물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나라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구미 각국은 발송우편물이 도착우편물에 비해 2배이상 많았다

당시 경성우편국에서 취급한 국제우편물 중에서 통상우편물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에서 보낸 통상우편물은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 등지에서 우편선에 실려 일본 요코하마(橫濱)나 고베(神戶)를 거쳐 경성우편국에 도착했다. 당시 미국에서 발행한 우편 안내책자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코하마까지는 선박으로 운송하는데 16일이 걸렸고 시애틀에서 요코하마까지는 12일이 걸렸다. 요코하마에 도착한 우편물을 서울로 운송하는 데는 2~3일이 더 소요되었다.

미국에서 도착한 통상우편물은 대부분 보통통상우편물로 일간 및 월간 신문, 잡지, 서적 등 인쇄물이었다. 특수취급우편물은 별로 없었다. 미국에서 발송한 우편물이 한국에서 발송한 우편물의 2배를 넘어 미국과의 우편물 교환은 도착우편물에 치우쳤음을 알 수 있다.

독일에서 보낸 우편행낭이 처음으로 경성우편국에 도착한 것은 1929년 5월이었다. 사전에 아무 통보도 없이 베를린철도우체국(Berlin Bahnpost 4)에서 보낸 통상폐낭편이 도착했다. 그 뒤 독일에서 발송한 통상우편물은 시베리아를 경유하여 다른 유럽 나라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경성우편국에 도착했다. 이들 우편물은 대부분 관공서나 은행, 회사, 전문학교 등으로 가는 서적, 신문, 잡지 등의 인쇄물이었다. 특수취급우편물도 미국보다 많은 편이었다.

프랑스에서 보낸 통상우편물은 인도양을 경유했는데, 마르세유에서 일본우선(日本郵船) 등에 실려 고베로 운송되었다. 운송에 소요되는 날짜는 35~38일로 매우 길었다.

프랑스에서 보낸 우편물은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특히 천주교 선교사에게 보낸 것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독일에서 온 우편물을 과학편이라 한다면, 프랑스에서 온 우편물은 종교편이라 할 수 있었다. 그처럼 우편물을 통해서도 상대국의 산업 내지 문화적 특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은 79명이었는데, 그 중에는 천주교 관계자가 66명이나 되었다 한다. 프랑스에서 온 우편물 중에는 미국에서 온 우편물과 마찬가지로 특수취급우편물이 적었다.

통상우편물의 교환을 통해 나라간의 문화의 차이를 엿볼 수 있듯 소포우편물의 교환을 통해서도 나라간의 산업의 발달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라마다 생산되는 자원이 다르고 발달한 산업이 다르듯 서로 교환하는 소포우편물도 달랐다. 각국별로 접수된 소포우편물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경우 약품, 의료기구, 양복 재료, 제화 재료, 서적, 인쇄물, 염료, 도료, 자전거 부품 등이 주를 이루었다. 반면에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지로 보내는 소포는 한국 특산품인 인견 제품, 테이블보, 놋쇠 제품, 한국 서적, 제약, 호박(琥珀)류 등이었다.

한편, 외국에서 도착한 소포우편물을 나라별로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의약품, 의료기구, 고무제품, 제과, 완구, 화장품, 구두, 엽연초, 문방구류, 메리야스류 등으로 그 내용이 다양했다. 중국에서 오는 소포는 목제 연간(煙桿), 당지(唐紙), 안경 주머니, 비취 등이 주를 이루었다. 영국의 경우 양복지 견본, 털메리야스, 모자 등이 많고, 독일은 의료기구와 서적 등이 많았다. 그처럼 우리나라에서 발송한 소포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수제품인 반면, 구미 각국에서 도착한 소포는 새로운 산업 내지 과학기술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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