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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 시간여행
제목 시간여행 제173호
등록일 2010. 6. 25.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대한민국” 국호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이주의 이벤트와 시간여행 구독, 추천하기 시간여행 구독하기 내용시작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한(韓), 조선(朝鮮), 동국(東國), 청구(靑丘), 해동(海東), 동이(東夷) 등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금수강산(錦繡江山), 소화(小華) 등의 국호로 불려왔다.
'한’ 또는 ‘대한(大韓)’은 우리 민족이 한족(韓族)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긴 말로서, 고대사회의 삼한(三韓)인 마한(馬韓)/진

한(辰韓)/변한(弁韓)을 비롯하여, 1897년 8월 국호 로 정한 대한제국(大韓帝國),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한(韓)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정통으로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 1948년 7월 1일 열린 제헌국회 제21차 회의에서 국호로 정하였다.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하였고, 영어로는 The Republic of Korea, 프랑스어로는 Republique de Coree, 독일어로는 die Republik Korea라고 표기한다.

제2의 우편, 우편번호제 시행

내용시작우편번호란 우편물의 행선지를 숫자로 부호화한 것으로서 우편물의 배달우체국과 그 관할구역의 고유번호를 말한다.
이를 토대로 한 우편번호제(Postal Code System)는 우편물을 발송할 때 수취인의 주소와 함께 우편번호를 우편물 표면 소정위치에 기입함으로써 그 부호에 따라 우편물을 보다 능률적으로 구분, 정리하고 운송하여 그 행선지까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배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제2의 우편, 우편번호제 시행 상세정보보기

우정사상 '제2의 우편탄생'이라고 불리는 우편번호제는 1959년 10월 영국 Noriuch시에서 세계 최초로 실시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66년부터 준비하여 1970년 7월 1일 전격 실시하였다.
우정사업본부(우표발행 당시, 체

신부)는 우편번호제의 실시를 축하하며 이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기념우표를 발행한바 있다. 제도실시 당시 5자리로 부여하였던 우편번호는 1988년 2월부터 여섯자리 숫자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다가오는 2012년 우편번호가 전면적으로 개편될 예정이다. 행정부처마다 따로 사용하는 번호체계를 하나로 통합하고 지금의 여섯자리에서 다섯자리 행정구역번호로 바뀌는 것이다.

사회
‘잃어버린 30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내용시작한국방송공사, KBS TV가 1983년 6월 30일부터 4개월 여 동안 24시간 생방송으로 기획한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은 전국을 오열로 출렁이게 했다.
KBS 청사와 여의도 광장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벽보로 가득 찼고, 산업은행 터에 마련된 9,200여 평의「만남의 광장」에는 연일 인파가 몰렸다.
4개월 반 동안 신청 건수는 10만 9백52건, 이 중 5만 3천5백 36건이

‘잃어버린 30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되어 1만 1백89가족이 뜨거운 해후를 했다.
4백53시간45분이란 단일 주제 생방송 기록을 남겼고, 한국뿐 아니

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방송 시작과 함께 슬프고 구성지게 울려 퍼지던 노래 '잃어버린 30년'의 노랫말을 되뇌이며, 아직도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의 만남이 속히 이루어지길 기원해 본다.

런던의 빈민굴에서 구세군 활동 시작되다

내용시작구세군 창립자인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4.10~1912.8.20)는 영국 노팅험(Nottingham)에서 태어났으며, 1855년 6월, 나중 ‘구세군의 어머니’로 알려진 캐서린 멈포드와 결혼하여 9명의 아이를 키웠다.
부스는 감리교회의 목사를 그만두고 1865년 7월 2일 동부 런던의 빈민굴에서 전도하기 시작한 것이 구

런던의 빈민굴에서 구세군 활동 시작되다 상세정보보기

세군(창립당시 '그리스도교 전도회_Christian Mission‘라 칭함)의 발단이 되었다.
구세군을 조직한 부스는 서민층을 상대로 동부지역 빈민가 등을 찾아가 노방전도를 했으며, 그리스도

신앙의 전통을 따르는 교리를 가지고 선도와 교육, 가난구제, 기타 자선 및 사회사업을 전개하였다.
구세군은 그의 생존시에 영국을 비롯한 세계 58개국에 걸쳐 설립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전세계 108개 국

가에서 지속적인 사회봉사를 펼치고 있다. 구세군의 창립자 부스가 평생의 목표를 발견한 곳은 바로 런던의 빈민굴에서 하던 설교를 통해서였으며 바로 그곳이 구세군이 시작된 곳이었다.

한국 전시·컨벤션 산업의 역사, COEX 명칭 공식화

내용시작국제적인 전시회 및 회의 개최를 통한 국제교류의 장을 마련할 목적으로 1979년 3월 개관한 한국종합전시장인 코엑스는 개관당시 KOEX라는 영문표기를 사용하였다.
KOEX는 개장 당시 단일 전시시설로는 동양최대의 위용을 과시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국력 신장을 표현

하는 국가 상징적 시설로 주목을 받았다.
그 이후 무역협회가 출자한 별도 법인이 1986년 5월 설립되었고, 1998년 7월 3일 Convention & Exhibition의 이니셜을 표기한 COEX(코엑스)라는 명칭을 공식화 하였다.

한국 전시·컨벤션 산업의 역사, COEX 명칭 공식화

성수대교 붕괴 2년 8개월만에 재개통

내용시작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출근길 차량들로 붐비는 아침 7시40분쯤, 성수대교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 상판 50여m가 "꽝" 소리와 함께 북쪽 상판 이음새가 먼저 끊어지고 이어 남쪽

상판이 떨어져 나갔다.
버스와 승용차 6대가 상판과 함께 강물로 추락하고 북쪽으로 달리던 시내버스는 끊긴 다리 끝부분에 뒷바퀴가 걸리면서 한바퀴 빙글 돌아 떨어졌다.

성수대교 붕괴 2년 8개월만에 재개통

사고현장은 비바람 속에 휴지처럼 구겨진 추락차량과 피투성이가 된 희생자들로 뒤범벅돼 있었고 바닥과 천장이 닿을 정도로 찌그러진 버스에서 학생들의 책가방, 안경, 볼펜, 도시락들이 비죽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이날 사고로 무학 여중고생 9명을 포함, 모두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성수대교 참사는 단순히 콘크리트 건조물 하나가 무너진 붕괴사고가 아니었다.
다리와 함께 온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나라가 함께 무너져

내렸으며 한국적 성장신화의 부끄러운 이면을 드러내는 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1997년 7월 3일, 32명의 귀중한 인명을 앗아갔던 성수대교가 붕괴 2년8개월 만에 재개통됐다.

정치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어떤 일이?

내용시작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하여 31개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서 체결된 평화협정인 베르사유조약(Treaty of Versailles)은 1919년 6월 28일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조인되었으며 1920년 1월 10일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베르사유조약은 연합국 및 관계국에게는 평화협정의 일환이었으나, 독일 국민에게 매우 가혹한 것이 되었다.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독일은 해외식민지를 모두 잃었고, 알자스로렌을 프랑스에 반환하였을 뿐만 아니라, 벨기에, 폴란드, 체코슬로바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어떤 일이?

아에게 각각 약간의 영토를 할양함으로써, 인구의 15%와 유럽에서의 영토의 10%를 잃었다.
또한 엄격한 군비제한이 부과되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민족인 오스

트리아와의 합병도 금하여졌다. 특히, 무거운 짐이 된 것은 배상으로서, 1921년에 1,320억 마르크가 결정되었다. 베르사유조약은 세계전쟁의 비참한 경험을 두 번 다시 되

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평화유지 기구로서 ‘국제연맹’의 설립을 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슈만플랜’ 주창자,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트 슈만 출생

내용시작ECSC(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1952년 석탄·철강의 생산 및 판매를 위해 창설한 공동관리 협력기구이다.
1950년 5월 9일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Robert Schuman, 1886.6.29~1963.9.4)이 제창한 프랑스/독일 석탄철강공동시장 설립안

에서 비롯한 것으로 공동규칙을 마련하여 카르텔을 단속하고 기업의 흡수·합병을 규제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중앙기구인 고등기관은 생산품의 가격·생산량·할당량을 책정하며 조약의 규정을 위반한 회사들에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슈만플랜’ 주창자,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트 슈만 출생

아메리카합중국 독립 선언

내용시작1775년 영국 국군과 아메리카 식민지군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하여 식민지의 반영(反英)항쟁은 무력항쟁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때 만해도 식민지측은 본국으로부터 독립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영제국(英帝國)의 일환으로서 머무를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대내외적으로 외국원조를 받아야 할 필요와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급진파 대두, T.페인의 공화제 독립(共和制獨立)을 호소하는 정치 팜플렛 '커먼센스, common sense'등의 영향으로 독립의 기운이 고조되었고, 제2차 대륙회의(大陸會議)는 76년 5월 각 식민

아메리카합중국 독립 선언

지에 대하여 새정부의 수립을 권고하였다.
각 식민지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사실상 독립 상태로 들어갔다. 한편 대륙회의에서 버지니아 대표 R.H.리의 독립의 결의(決議) 제안에 따라 6월 7일에 5인 기초위원이 임명되었다.
원안은 위원의 한 사람인 T.제퍼슨

이 기초하였고, 역시 위원인 B.프랭클린과 J.애덤스가 약간 가필하여 대륙회의에 제출하여 7월 4일 전원일치로 가결, 공포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독립선언이다.
이 독립선언문은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라는 천부의 권리가 존재함을 지적하면서 그 권리의 확보를 위하여 정부가 조직되어야 하며 정

부의 정당성은 ‘피치자(被治者)의 동의(同意)’에 유래한 것이라고 말하여 혁명권(革命權)의 존재를 주장하였다.
그 후, 미국과 영국 제국은 1783년 파리 조약으로 평화 협정을 맺었고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이탈리아 국민영웅, 통일운동가 가리발디 출생

내용시작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을 받는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7.7.4~1882.6.2)는 니스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르디니아 해군에 복무 중 청년 이탈리아당의 혁명운동에 가담하였다가 1834년 관헌에 쫓겨 프랑스

로 피신하였다. 프랑스에서 남미로 건너간 그는 리오그란데와 우루과이의 독립전쟁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848년 해방전쟁이 일어나자 귀국, 의용군을 조직하여 참가하였으나 패배한 후 로마의 혁명공화정부에

이탈리아 국민영웅, 통일운동가 가리발디 출생

참가하여 나폴레옹 3세의 무력간섭에 대한 방어전을 지휘하였다. 이듬해 공화정부가 붕괴되자 뉴욕으로 망명하였다가 1854년 귀국하여 카프레라섬에서 살았다.
이 무렵 공화주의로부터 사르데냐왕국에 의한 이탈리아통일주의로 전향, 1859년의 해방전쟁에서는 알

프스 의용대를 지휘하였고, 이듬해 5월에는 ‘붉은 셔츠대’를 조직하여 남이탈리아왕국을 점령, 사르디니아왕에 바침으로써 이탈리아통일에 기여하였다.
평민 출신인 가리발디는 애국심이라는 새로운 뜻으로 민중을 일깨우는 과업을 카보우르나 마치니보다

훨씬 잘 수행했다. 게다가 자신의 군사적·정치적 재능을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대의(大義)에 이용한 것이 당시의 조류와 잘 맞아떨어져 그에게 커다란 갈채를 안겨주었다. 더불어 자신의 부귀영화에는 관심이 없는 정직한 인격으로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문화
프랑스 풍경화가, 아르피니 출생

내용시작프랑스 출신의 풍경화가인 앙리 아르피니(Henri Harpignies, 1819. 6. 28~1916. 8. 28)는 27세 때 미술에 전념하여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차츰 코로(Camille Corot, 1796~1875)의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 풍경 화에 두각을 보였다.

그의 풍경화는 구조적인 데생과 폭넓은 처리가 특징이며 은색이 주조를 이룬다. 1861년의 '파리 살롱전'에서 처음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전람회의 고정 출품자가 되었다.

프랑스 풍경화가, 아르피니 출생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 출생

내용시작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Antoine-Marie-Roger de Saint-Exupéry, 1900.6.29~1944.7.31)가 쓴 불후의 명작 ‘어린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서 인간의 고독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과 해답을 제시한 시적이며 아름다운 분위기의 휴머니스틱 한 작품이다.
진정한 의미의 삶을 개별적인 인간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정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 출생

신적 유대에서 찾으려 했던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군복무 동안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후, 1926년 툴루즈의 라테코에르사(社)에 들어가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통과하는 항공우편항로를 개설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는 비행에서 영웅적 행위의 원천과 새로운 문학적 주제를 발견했다. 그의 작품들은 목숨을 내건 위

험한 모험이야말로 인간의 소명을 가장 숭고하게 실현하는 것이라고 찬양했다.
언제나 어려움과 역경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의의를 찾는 내용의 “남방 우편기, Courrier Sud(1929)”, “성채_城砦, Citadelle(1948)”를 저술 하였고, 아르헨티나 항공 근무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한 “야간비행, Vol de nuit(1931)”을 저술하여 행동적인 문학

으로서 A.지드의 격찬을 받으며 페미나상(賞)을 받았다.
또한 자신이 직접 삽화를 넣어 독특한 시적세계를 다룬 “어린왕자, Le Petit Prince(1943)”는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작품이 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정찰비행 임무를 수행하다가 격추 당해 행방불명되었다.

미국의 작곡가겸 작사가, 로서

내용시작'진정한 노력 없이도 성공하는 방법, How to Succeed in Buisiness Without Really Trying'으로 196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곡가겸 작사가인 로서(Loesser, Frank, 1910.06.29~1969.07.28).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던 그의 아

버지는 어린시절 대중가요에 대한 그의 관심을 돌리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는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고, 뉴욕 시티 칼리지를 중퇴한 후로는 1920년대 말 음악출판사에서 작사가의 자리를 얻을 때까지 음악과는 상관없는 여러 직업을 전

미국의 작곡가겸 작사가, 로서

전했다.
그의 작품은 “내가 쌍둥이라면, I Wish, I Were Twins(1934)”이 팻츠

월터에 의해 녹음되기 전까지는 거의 발표되지 않았다. 1936년 할리우드로 간 그는 그곳에서 작사가로

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마가렛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첫 발행

내용시작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 1900.11.8~1949.8.16)의 유일한 작품으로 집필기간이 무려 10년(1926~36)에 이르고, 천페이지가 넘는 대작으로 평가받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총 5부작으로 이루어진 대하드라마다.
남북전쟁(1861~65)과 패전, 재건

시대의 급변하는 사회상을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아름답고 강인한 스칼렛 오하라의 인생과 파란만장한 사랑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에 비해 연약한 이상주의자 애슐리 윌크스에 대한 스칼렛 오하라의 사랑, 물질주의적이며 행동가인 레트 버틀러와의 애증 등을 한데 엮

마가렛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첫 발행

은, 간결한 문체와 정교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36년 6월 30일 첫 발행 후 1년 동안에 150만 부가 팔렸으며 10여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

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1936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1939년 빅터 프레밍 감독이 비비안 리(스칼렛 역), 클라크 게이블(레트 역)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기도 하였다. 한편 1991년 미국 소설가 A.리플리가 속편격인 '스칼렛'을 써서 40여 개국에서 번역되었다.

바로크 건축의 최고걸작을 남긴 건축가 치머만

내용시작회반죽 장식가로 건축계에 입문한 독일의 건축가 치머만(Dominikus Zimmermann, 1685. 6. 30 ~ 1766. 11. 16)은 바로크 건축 전문가로, 그가 비스에 지은 교회는 바로크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대부분의 건축활동을 2채의 '종합 예술작품' 건물을 짓는 데 바쳤고 형(요한 밥티스트 치머만)과 함께 구조 및 장식의 거의 모든 부분을 직접 설계하고 시공했다.

이 구조물은 가볍고 경쾌한 구조, 우아한 채색으로 물이 흐르는 듯 물결치는 회반죽 장식과 프레스코 때문에 로코코 양식의 참모습을 띤 첫 번째 교회로 평가 받는다.

바로크 건축의 최고걸작을 남긴 건축가 치머만

식민시대 미국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 코플리 출생

내용시작보스턴 출생으로 독학으로 공부한 미국의 화가 코플리(John Singleton Copley, 1738.7.3~1815.9.9)는 초상화를 주로 그렸으나 역사화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식민지시대에 번성한 초상화 유파에 들어가 초상화를 개발했고 초상화가로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코플리는 초상화에서 로코코 양식의 무대장치를 충분히 활용했는데, 이렇게 주인공을 일상생활과 밀접한 기물과 함께 그리는 'portrait d'apparat'는 18세기 미국 회화

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함과 날카로움을 그의 작품에 부여해주었다.
출세작 '왓슨과 상어, Watson and the Shark(1778)'에서 코플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투쟁을 주제로 다루었는데, 이것은 19세기 낭만주의 미술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영국낭만주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식민시대 미국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 코플리 출생

과학
미·소 공동 우주계획 협상의 주역, 드라이든 출생

내용시작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부국장을 7년간 지내기도 한 미국의 물리학자 드라이든(1898. 7. 2~1965. 12. 2)은 1920년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 대학을 졸업한 뒤 워싱턴에 있는 국립표준국의 공기역학과 과장으로 임명되었다.
고속 공기역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으며 음속에서 날개 표면 부근의 공기 흐름에 대한 연구를 처음으로 수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국립국방 연구위원회(NDRC)의 '워싱턴 계획'을 맡아 미국 최초의 성공적인 유도 미사일인 배트 레이더 유

미·소 공동 우주계획 협상의 주역, 드라이든 출생

도 미사일(Bat radar-homing missile)을 개발했는데,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해군이 대일본전에 사용 되었다.
1947년 국립표준국에서 물러나 미

국항공자문위원회(NACA)의 항공학 연구부 책임자가 되었다.
2년 뒤에는 NACA 회장이 되었으며 그의 재임기간 동안 이 기구는 진보한 항공학 연구와 개발로 명성

을 얻었다. 1958년 NASA의 부국장이 되었고, 1962년에는 미·소 공동 우주계획을 위한 협상을 이끌어 낸 장본인으로 기록된다.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 화성 착륙

내용시작패스파인더는 '선도자'라는 뜻으로 화성 탐사선의 이름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진행한 화성 탐사 계획 '디스커버리 프로젝트' 중 하나로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여부와 과학기지 건설을 위한 각종 조사 작업 등을 목표로 하였다.
이 우주선은 1996년 12월 4일 발사되어 1997년 7월 4일 약 1억 9100만 km를 비행한 끝에 화성에 도착하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 화성 착륙

였다. 우주 로켓 발사 역사상 최초로 착륙에 에어백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활동기간은 1화성년(687일)이며, 내부에는 6개의 바퀴가 달린 탐사 로봇 소저너(Sojourner)가 탑재되어 있다. 소저너의 활동기간은 당초 1주일로 예상하였으나 6주 이상 활동하였다.
1997년 7월 4일 화성에 착륙하여

화성 표면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패스파인더호 이후 랜더호와 글로벌 서베이어호가 계속해서 화성을 탐사했다.
특히 글로벌 서베이어호가 보내온 화성 표면 사진에서 호수나 얕은 바다가 있어야 생성되는 충적층이 발견되어 화성에 물과 생명체가 존재했을 것이란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지속되어온 화성탐사 연구는 2008년 5월 25일 화성 탐사로봇 피닉스호가 "로봇팔을 이용해 화성 표면에서 파낸 물체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얼음이라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NASA가 밝힌 바 있다. 화성은 미·러 양국을 위시하여 새로운 우주개발의 전초기지 대상이 되고 있다.

금주의 노벨상

[노벨평화상] 국제노동기구(ILO) 창설자, 주오 출생

국제노동기구(ILO) 창설자, 주오 출생 내용시작프랑스의 사회주의자이자 노동조합 지도자였던 주오(Léon Jouhaux, 1879. 7. 1~1954. 4. 28) 16세부터 성냥공장에서 일했으며, 곧 혁명적 생디칼리슴의 지도적인 선전가로 성장했다.
노동총동맹(CGT)에 가입, 활약하였는데, 1909년부터 38년간 서기장을 지냈다.
원래 아나르코 생디칼리슴(anarcho-syndicalisme:무정부주의에 의한 혁명적 노동조합주의)을 신봉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계급 협조주의자’가 되었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창설자의 한 사람으로, 국제노동조합연맹 부회장을 지냈다. 1949년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ICFTU) 창설을 도왔고, 1951년 11월 5일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행복하다는 것은 소망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 헤르만헤세

내용시작남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출생한 헤세(Hermann Hesse, 1877.7.2~1962.8.9)는 천성적인 자연아(自然兒)로서, 개성에 눈뜨면서 미래의 시인을 꿈꾸며 신학교(마울브론신학대학)의 속박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탈주, 한때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간의 위기에 대한 심오한 감성을 지닌 작가로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 J. B. 랑과 함께 정신분석을 연구했으며 융과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분석의 영향이 '데미안, Demian(1919)'에 나타나는데, 이 소설은 고뇌하는 청년의 자기인식 과정을 고찰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곤경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그는 유명해졌다.
단편집, 시집, 우화집, 여행기, 평론, 수상(隨想), 서한집 등 다양한 종류의 간행물을 쓴 헤르만헤세는 20세기의 문명비판서라 할 수 있는 미래소설 '유리알유희, Das Glasperlenspiel(1943)'를 통해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헤세는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을 찾기 위해 문명의 기존 양식들을 벗어나 인간을 주제삼은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세상을 떠난 후 영어권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노벨 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한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손꼽힌다.

온라인미술관
바로크시대 최고의 화가, 루벤스 출생
바로크시대 최고의 화가, 루벤스 출생 상세정보보기

내용시작독일 출생의 플랑드르의 화가였던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6.28~1640.5.30)는 바로크 시대 플랑드르 제일의 화가로서 날로 높아가는 명성과 많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특유의 화려하고 장대한 예술을 펼쳐나갔다.
역사화·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제재를 작품화하였는데, 파리의 뤽상부르궁전의 21면으로 이루어진 연작 대벽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그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루벤스 예술의 모든 특징을 담고 있으며 바로크회화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현란한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게 타오르는 듯한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울려 생기가 넘친다. 외교관으로서도 활약하였으며 원만하고 따뜻한 인품으로 말미암아 유럽 각국 왕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 고향사람들로부터도 환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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