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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 시간여행
제목 시간여행 제172호
등록일 2010. 6. 18.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6.25전쟁 60주년

이주의 이벤트와 시간여행 구독, 추천하기 시간여행 구독하기 내용시작1950년, 한반도는 전쟁의 포화가 가득했던 참혹한 땅이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던 슬픔의 땅이었다. 그리고 6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 풍요와 평화 속에서,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겪었던 비극의 역사를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6.25 전쟁은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

갔으며 이 땅을 모든 것이 사라진 폐허로 만들었다. 동족 간에 총구를 겨누어야 했던 참담한 역사를 남기고, 남북으로 갈라져 만날 수 없는 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 손닿을 곳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들은 이제 휴전 57년이 흐르면서 삶의

마지막 여정에 서서 살아생전 가족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6.25 전쟁 60주년을 맞는 이 때, 거창한 정치적 이념은 차치해 두고서라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60년 전 자유를 위해 그들이 목숨을 바치며 지켜낸 조국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기념우표는 휴전선 철조망 위를 평화롭게 노니는 한 마리 나비를 그리고 있다. 자유롭게 날갯짓하는 나비를 보며 한반도에도 그러한 평화가 넘치는 날이 오기를 꿈꿔 본다.

사회
남극조약 발효

내용시작남극조약은 미국 대통령 D.D.아이젠하워의 제안으로 1959년 12월 미국 ·영국 ·소련 ·일본 등 12개국이 참가하여 과학연구를 위해 남극대륙을 비무장지대로 보존할 것을 주요골자로 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61년 6월 23일 발효되었다. 남극조약은 남극대륙에 대한 영토주권의 주장을 반대하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기지 설치, 군사기동훈련,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실험, 방사능폐기물의 처분 등을 금하는 것

남극조약 발효

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또한 자유로운 과학탐사와 과학정보 및 전문인력의 교환을 장려하고 있다. 한국은 1986년 세계에서 33번째로 가

입했으며, 88년 2월 남극의 킹 조지섬에 세종기지를 완공함으로써 세계에서 18번째로 과학기지를 건설한 국가가 되었고, 그 이듬해 10월

에 세계에서 23번째로 협의당사국의 지위를 얻었다.

일본 오키나와 수비대 전멸

내용시작제2차 세계대전 말기 태평양전쟁의 주요 전장에서 승리한 미군은 일본 본토를 폭격 사정권에 둠으로써 본격적인 공세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드웨이 해전과 유황도 공방전의 참패 이후 모든 제해권과 제공권을 미국에 넘겨주고 개전 이후 최초로 일본 영토 내에서의 전면전을 앞둔 일본은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3월 말 사이몬 버크너 육군중장이 지휘하는 5개 사단 8만 5000명으로 구성된 상륙부대는 오키나와를 향해 진격하였

고 이에 대항해 일본은 제32군 총 병력 10만 명을 배치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드디어 4월 1일 가데나만에 상륙한 미군 주력 4개 사단은 교두보를 확보하고 일본군과 전면전을 시작하였다. 초기의 전투양상은 미군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섬 전체에 걸친 무수한 동굴에 형성된 천혜의 진지를 바탕으로 옥쇄를 각오한 저항에 부딪힌 미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전장을 힘겹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이 막강한 화력지원을 배경으로 전면적

일본 오키나와 수비대 전멸

인 토벌작전에 돌입하자 급기야 5월 31일 일본군은 전력의 85%를 잃고 최후의 항전에 들어갔다. 이후 약 20여 일 간 펼쳐진 치열한 공방

전 끝에 결국 우시지마 사령관 및 죠 참모장을 위시한 일본군 전원이 옥쇄함으로써 전투는 종결되었다. 83일에 걸친 치열한 전투결과 일본

군 전사자 10만, 미군 전사자 1만으로 추산되며 오키나와 본섬의 주민사망자가 12만 명에 달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국제연합 헌장조인

내용시작국제연합의 근본조직과 기본적 활동원칙을 정한 근본법인 국제연합헌장(國際聯合憲章,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은 1945년 2월의 얄타회담(제2차 세계대전 종반, 우크라이나 얄타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들이 가진 회담)을 거쳐, 1945년 6월 2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50개국이 국제연합헌장에 조

인하고 (그 이후 폴란드 가입으로 51개국) 10월 24일 발효되었다. 국제연합헌장 제1조는 국제연합의 목적으로서 국제평화 및 안전을 유지할 것, 여러 국가 간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킬 것,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도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국제협력을 달성할 것 등을 들고 있다.

국제연합 헌장조인

헬렌 켈러

내용시작세계 최초로 대학교육을 받은 맹농아로 기록되는 미국의 저술가이자 사회사업가인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6.27~1968.6.1)는 19개월이 되던 해 심한 열병을 앓은 후, 시각과 청각을 잃고 벙어리가 되었다. 가정교사 A.M.설리번의 지속적이고 애정 어린 교육을 받은 켈러는 1900년에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하여, 세계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맹농아자로서 1904년 우등생으로 졸업 하였다. 그녀를 지켜본 미국소설가 마크트웨인은 '삼중고를 안고 마음의 힘, 정신의 힘으로 오늘의 영예

를 차지하고도 아직 여유가 있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노력과 정신력은 전 세계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다양한 활동으로 ‘빛의 천사’로도 불렸다. 일생을 농아와 맹인을 돕는 데 헌신하였으며, '나의 생애, The Story of My Life(1902)', '암흑 속에서 벗어나, Out of the Dark(1913)', '나의 종교, My Religion(1927) 등의 저서를 남겼다. 설리번의 교육을 받는 켈러의 어린시절을 묘사한 윌리엄 깁슨의 희곡 '기적을 일으킨 사람 The Miracle Worker'은 1960년에 퓰리처상을 받기도 하였다.

헬렌 켈러

올림픽고속도로 개통

내용시작1981년 10월 6일 착공하여 1984년 6월 27일 준공, 개통한 88올림픽고속도로는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고서분기점)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옥포분기점)에 이르는 고속도로로 공사비 2천39억원을 들여 착공한 지 33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구간 시멘트 콘크리트 포장도로인 88올림픽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영·호남 지역의 인적, 물적 교류가 원활해지고 주행시간도 20km 단축되어

종전의 3시간 30분대에서 2시간 30분대로 줄이는 효과를 가져 왔다. 또한 영동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동서횡단로 가운데 하나로, 험난한 소백산맥의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88올림픽고속도로는 도로변의 가야산국립공원·덕유산국립공원·지리산국립공원의 관광자원 개발 및 토지 이용의 증대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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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 문맹퇴치 공로상 “세종대왕상” 창설

내용시작세종대왕상(世宗大王賞)은 한국 정부(외교통상부)의 지원으로 1989년 6월 21일에 제정되어 1990년부터 시상해오고 있는 상으로, 정식명칭은 세종대왕 문해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다.
올해로 제 18회를 맞이하는 이 상은 문해(文解, 글을 읽고 이해함), 특히 개발도상국의 모어(母語) 발전 및 보급에 크게 기여한 개인/단체/기구 2명(곳)에게 매년(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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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의 날) 시상한다.
세종대왕상의 후보는 유네스코 회원국 정부, 또는 유네스코와 공식 관계를 맺고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

들이 각 2명까지 추천할 수 있으며, 수상자는 국제심사위원단의 추천으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선정한다.

각 수상자에게는 상금 미화 1만 5,000불과 상장, 세종대왕 은메달을 수여하며, 시상식은 매년 9월8일 세계 문해의 날에 열린다.

정치
나폴레옹 니멘강을 건너다.

내용시작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영국은 나폴레옹에게 있어서 항상 골칫거리였다. 나폴레옹은 결국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1806년 대륙봉쇄령을 내려 유럽국가들로 하여금 영국과의 모든 교역을 일제히 금지시켰다. 그러나 영국과의 무역에 의해 경제를 유지하던 러시아는 생존권에 영향을 받자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반기를 들게 된다. 이에 격분한 나폴레옹은 1812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니멘강을 건너 러시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파죽지세의 승리처럼 보이는 전장은 러시아군의 지능적인 퇴각전에 휘말리며 미쳐 대처할 겨를도 없이 깊숙한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퇴각하면서 러시아군은 도시와 곡식에 불을 질러, 프랑스군이 손대지 못하게 하고 깊숙이 달아난 것이다. 식량은 얻지 못한 프랑스군은 모스크바까지 진격하였으나 예상과는 달리 결국 부

나폴레옹 니멘강을 건너다.

족한 식량과 혹독한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순간을 기다린 러시아군은 철수

하는 프랑스군의 뒤를 쫓아 공격하여 궤멸시켰다. 이 전쟁이후 프랑스의 대패를 목격한 유럽 각국은

일제히 반(反)나폴레옹의 기치를 내걸었으며 이후 나폴레옹의 급속한 몰락으로 이어졌다.

캐나다의 정치가 보든

내용시작캐나다의 정치가인 보든(Robert Laird Borden, 1854.6.26~1937.6.10) 총리 재임시절 영국과 긴밀하게 제휴하여 제1차 세계대전 중의 난국을 타개하였으며, 대전 후에도 캐나다의 국제적 지위의 향상에 힘썼다. 베르사유조약에서 영국 본국과는 따로 단독조인을 하였으며 국제연맹에 캐나다가 별도의 회원국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써 캐나다의 위상을 식민지에서 독립된 국가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였다. 1896년 하원의원, 1901년 보수당 당수, 1911년 캐나다의 제8대 총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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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특사

내용시작1905년 일제의 강압과 을사오적의 강요에 의한 을사늑약 체결에 따라 대한제국은 외교권 박탈과 국권 상실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와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열강에 호소하는 외교활동을 전개하고자 1907년 6월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 특사를 비밀리에 파견하였다. 고종황제의 신임장과 밀서를 지니고 두 달여에 걸친 여정 끝에 러시아를 거쳐 헤이

그에 도착한 특사 일행은 현지에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각국 대표에게 서신을 보내고, 공개 연설과 언론 보도를 하는 등 국제사회에 우리의 상황을 알리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준은 헤이그에서 분사(憤死)하고 이상설과 이위종은 유럽을 순회하며 국권회복을 위한 외교활동을 계속 하였다. 일제의 통감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는 7월 3일 특사파견 사실을 빌미로 고종의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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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일본 총리대신에게 건의하는 등 각종 협박을 가한 끝에, 20일 일본 군대의 포위 속에 고종은 순종에 대한 양위의 형식을 빌어 사실상 폐위 당했다. 이어 일제는 한국 군대를 해산시키고 한일신협약을 강요하여 한국의 내정까지 장악하고야 말았다.
네덜란드 헤이그시에 위치한 이준열사 기념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다.

이준열사의 생사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사람이 산다는 것 무엇이냐
죽어도 죽잖은 것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나니
그릇 살면 차라리 죽음만도 못하고, 제대로 죽으면 되려 영생하느니
살고 죽는 게 모두 제게 달렸다면 모름지기 죽고 삶을 바르게 힘쓰라.

* 을사오적 : 일제의 조선 침략과정에서, 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한국 측 대신 가운데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명의 대신으로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부대신 권중현을 말한다.

문화
조선조 시조문학의 대가 윤선도

내용시작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는 조선중기에 호남이 낳은 대시인이며, 조선조 시조문학의 대미를 장식한 대가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는 학문 뿐만아니라 철학을 위시하여 경사서(經史書) 제자백가(諸子百家)에 통달하여 정치, 학문,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었으며, 음양지리, 의약, 천문 등 다방면에 능통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산은 정치의 격랑 속에서 이십 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했으나 가산이 넉넉하여 보길도에서 화려한 은거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시조들은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선비의 생활과 서정을 이상화해서 절제된 표현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어부사시사’, ‘다섯 벗의 노래(五友歌)’ 같은 작품들은 선비 시조의 최고이며 산수 미학의 절정이라는 평을 받는다. 박인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전쟁터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태평사’, ‘선상탄’을 썼다. 무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서 ‘누항사’와 ‘밭갈이 노래’, ‘가난의 노래’ 들을 썼는데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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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의 가난한 현실을 잘 담고 있다. 그의 시조는 일반적 주제인 자연과의 화합을 주제로 담았으며,

우리말을 쉽고 간소하며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한국어의 예술적 가치를 발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

다.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2000년 우표로 발행된 바 있다.

일본의 서양화가 기시다 류세이

내용시작선명한 색채와 대담한 필치로 표현된 후기 인상파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선보이며 당대의 일본 미술계에 혁신적 화풍을 일으켰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기시다 류세이(岸田劉生, 1891. 6. 23 ~1929)는 1908년 하쿠바카이 서양화연구소에서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에게 사사했다. 1910년 제4회 문부성 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는 이후 반(反)자연주의 회화운동의 선봉으로서 활동하였다. 시대착오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기존의 화풍에 정면으로 도

전한 류세이는 청년화가들을 중심으로 진보적인 화가그룹을 결성하며 인간 내면에 포함된 자연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기위해 노력하였다. 순수한 자연의 표현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들은 후기 세밀화된 사실주의 작품들로 귀결되며 동시대 일본 화단의 사상적 배경에 역행하는 새로운 발전의 모태로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의 서양화가 기시다 류세이

프랑스 유머작가 쿠르클린

내용시작프랑스의 작가로서 23세의 나이에 '현대파리(Paris moderne)'라는 문학잡지 창간을 통하여 문단에 데뷔한 쿠르틀린(Georges Courteline, 1858.6.25~1929.6.25)은 프랑스 최고의 유머 작가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는 1893년 '부부로슈, Boubouroche'가 자유극장에서 공연되어 갈채를 받고부터 희극작가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계급이 낮은 관리들, 소시민들의 생활을 가벼운 풍자와 웃음을 통하여 사회생활, 사회구조의 밑바닥에

깔린 습관 등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한 작품들이며, 소시민들의 무지함, 인색함, 인간의 연약함, 선량함 등 일상적인 진실을 가벼운 터치로 그려냈다. 주요 작품으로 '경찰서장님은 마음씨가 좋아(1899)', '우리 집의 평화, La Paix chez soi(1903)', '관료들, Messieurs les ronds-de-cuir(1893)' 등이 있다.

프랑스 유머작가 쿠르클린

공학적 합리성과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건축가, 네르비

내용시작이탈리아의 건축구조가인 네르비(Pier Luigi Nervi, 1891.6.21~1979.1.9)는 철근과 콘크리트 구조물을 사용한 장(長)스팬 구조에 기술적인 천재성과 극적인 디자인 감각을 펼쳐 명성을 얻었다.
1913년 볼로냐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46년 로마대학 건축학부 교수, 1957년에는 미국 미술 ·문학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되었다.
근대건축에서 철근/철골/콘크리트의 구조체가 지니고 있는 공학적

합리성과 미학적 가치를 강하게 표현함은 물론, 노출된 구조물 몸체의 역학적 표현력의 추구 및 건축물에 기술의 독창적 해석과 시각적으로 박력이 넘치는 디자인을 채용하였다.
주요작품으로 역학적 표현력이 돋보인 피렌체의 벨타경기장 이외에도 토리노 박람회 때 세운 103m 스팬의 조립식 아치(1949~50)와 공동작품인 이탈리아 최초의 마천루, 밀라노의 피렐리 빌딩(1955) 등이 있다.

공학적 합리성과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건축가, 네르비

한국화가 김은호

내용시작김은호(金殷鎬, 1892~1979) 화백은 뛰어난 인물 묘사 실력으로 송병준, 대한제국 순종 등의 얼굴을 그리면서 점차 이름을 얻게 되었다. 1919년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적도 있으나, 1920년대 후반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식 채색화 기법을 익히면서 친일본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즐겨 그린 그림은 〈승무도〉 연작으로 대표되는 미인도와 신선도, 화조도 등이다. 일찍부터 후진 양성에 관심

을 보이고 후소회를 통해 제자를 많이 배출하여 동양화단에서 단단한 인맥을 갖고 있었다. 운보 김기창이 대표적인 김은호의 제자이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고 문화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3·1 문화상(1965)과 예술원상(1968)도 수상했다. 두드러진 친일 이력과 일본풍으로 의심받는 화풍과 관련하여, 김은호가 그린 논개와 춘향의 영정을 철거하자는 주장과 논란이 있었다.

한국화가 김은호

프랑스 오페라 발전의 초석

내용시작프랑스의 작곡가. C.글루크의 영향을 받아 극적인 표현과 관현악의 효과를 잘 살린 오페라와 오페라코미크를 작곡하여 이름을 떨친 메월(Etienne-Nicolas Mehul, 1763.6.22~1817.10.18)은 프랑스 지베에서 출생했다. 그는 풍부한 자질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케루비니와 르쉬외르와 함께 베를리오즈를 미리 예견한 작곡가였다. 뛰어난 대본작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대담한 화성감각을 지녔으며, 극적 요소와 관현악을 다루는 천부적 재능

프랑스 오페라 발전의 초석 상세정보보기

을 타고났다. 오페라에 있어 관현악의 역할을 강조해 음악 주제를 극내용의 전개에 따라 교향곡적으로 발전시켰으며, 피아노소나타 실

내악곡, 관현악곡 등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외프로진과 코라댕 혹은 교화된 폭군(1790)', '이성의 찬가(1793)', '출정의

노래(1794)'등이 있다.
※ 오페라코미크 : '익살스러운 오페라'라는 뜻으로 프랑스의 희가극을 총칭.

과학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내용시작1852년 6월 25일 에스파냐 남부에서 구리세공장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Antonio Gaudiy Cornet, 1852.6.25~1926.6.10)는 17세 때부터 건축을 공부하였다. 바르셀로나의 건축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학창

시절에 비라르와 폰트스레 등의 조수로서 설계활동에 종사하였다. 그는 학창시절, 대담하고 혁신적인 건축설계로 과제물마다 논란을 일으키며 ‘괴짜 아니면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1878년 학교 졸업 후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부터는 자신만의 독자적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그의 천재성을 간파한 부유한 은행가문 출신의 구엘 도움으로 돈 걱정이 사라진 뒤부터 아파트에서 대학 건물, 성당 등 명작들을 쏟아 내었다. 1883년부터 선배 뒤를 이어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대성당)의 설계와 공사를

맡으면서도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놓은 듯한 6층짜리 아파트 카사밀라, 기묘한 창문으로 유명한 카사 바트요, 후원자 구엘을 기념하기 위한 구엘 공원 등도 잇따라 선보였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사생활이 곧 건축이었던 가우디는 낡은 침대 하나만 남기고 1926년 교통사

고로 사망했지만 건축작품은 바로셀로나와 스페인에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영원한 풍요를 선사하고 있다. 스페인의 항구도시 바르셀로나를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가우디가 설계한 작품들이 즐비한 광경을 탐닉하기 위함일 것이다.

금주의 노벨상

[노벨물리학상] 우주선 연구의 선구자

우주선 연구의 선구자 내용시작오스트리아 출생의 미국 물리학자인 헤스(Victor Francis Hess, 1883.6.24~1964.12.17)는 1911〜1913년 경기구를 이용해 고공 관측을 함으로써 초방사선 즉 외부 우주에서 유래된 고에너지 복사인 우주선(宇宙線)을 발견하고, 그 성질을 정밀히 조사하여 현대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방사능과 대기전기에 관한 연구도중 기구(氣球)의 상승에 따른 고도의 변화에 대하여 전기전도율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훗날 앤더슨에 의해 양전자 발견으로 이어진 이 실험은 이론으로 정립된 우주선에 대한 추측을 실제로 증명한 것이었고 이 업적으로 1936년 미국의 칼 D. 앤더슨(Carl David Anderson, 1905.9.3~1991.1.11)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노벨문학상] 미국의 여류작가 펄벅

미국의 여류작가 펄벅 내용시작1930년 중국에 있어서의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장편 처녀작 '동풍·서풍, (East Wind : West Wind)'을 출판하여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빈농으로부터 입신하여 대지주가 되는 ‘왕룽(王龍)’을 중심으로 그의 일가의 역사를 그린 장편소설 '대지 (The Good Earth,1931)', '아들들, (Sons,1933)', '분열된 일가(A House Divided,1935)' 3부작으로 구성되는 '대지 3부작'으로 1938년 미국의 여류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장로교회의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펄벅은 (Pearl Comfort Buck, 1892.6.26~1973.3.6) 서양인으로서 동양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양심으로서 평화를 위한 집필을 계속하였으며 펄벅 재단을 설립하여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였다.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사생아 입양 알선사업을 벌였고, 1967년에는 이 사업에 700만 달러를 희사하였다. 6·25전쟁 후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The Living Reed(1963)'와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1968)' 등 한국을 묘사한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노벨문학상] 1905 - 실존주의 대표 사상가 사르트르, 노벨문학상 거부

1905 - 실존주의 대표 사상가 사르트르, 노벨문학상 거부 내용시작개별적 인간 존재의 자유를 주창하는 철학인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소설가였던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6.21~1980.4.15)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2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조부였던 C.슈바이처의 슬하에서 자랐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전개한 존재론으로서 결정적인 작업이자, 세계적으로 보아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중부터 전후에 걸친 그 시대의 사조를 대표하는 웅대한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1943년작 “존재와 무”를 비롯하여 ‘레탕모데른’지(誌)를 창간하여 문학적 지도자로서의 활동도 단행하였다.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였던만큼 사르트르는 “사회참여”사상에 일관된 작품활동을 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와 '자유에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의 필력이 소갈된 무렵인 말년에는 "참여는 행위이지 말이 아니다"란 신념으로 폭동, 좌익 문학활동, 그밖에 '혁명'을 촉진한다고 생각한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자주 거리로 뛰쳐나갔던 급진적 사회주의자의 모습을 띄기도 하였다.
1964년 자서전적인 책 '말'을 출판할 준비를 했는데, 이 책이 1964년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것을 알고는 수상을 거부하였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이유로는 노벨상이 '부르주아들의 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존주의적 성향으로 일관하여온 그가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견해와 그의 라이벌이었던 카뮈(Albert Camus, 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보다 늦게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불만을 품은 것이라는 의견도 전해진다.

온라인미술관
근대 한국화의 산증인
근대 한국화의 산증인 상세정보보기

내용시작전통적인 문인화의 격조를 현대적으로 변용 시켜 새로운 한국화의 경지를 개척해 온 한국화의 대원로(大元老)였던 장우성(張遇聖, 1912년 6월 22일 - 2005년 2월 28일). 그는 18세 때 이당 김은호 문하로 한국화에 입문한 이후, 평생을 한국화에 헌신한 근대 한국화의 산증인이다. 그의 예술의 기본은 고고하고 격조 높은 문인정신과 회화적인 감각과 기술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킨 정신과 형식의 일치에 있다. 간략한 대상의 설정과 여백의 공간 구성을 통한 그의 화면에는 정(靜)과 동(動)의 세계가 함축된 놀라운 직관의 세계가 자리한다. 또한 문인화의 정신세계를 다루되, 현실과 사회상황으로부터 다양한 소재를 채택하여 자칫 빠지기 쉬운 관념의 함몰로부터 의연하였다. 결국 그는 한국적 전통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우리 한국화의 제 1 과제를 자신의 화폭 안에서 개척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 국회의사당의 벽화'백두산 천지'와 아산 현충사 및 정읍 충렬사에 봉안된 '이충무공영정(李忠武公影幀)', 바티칸궁전에 소장된 '성모자상(聖母子像)'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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