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 시간여행 제1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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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 6. 3. |
| 첨부파일 | 첨부파일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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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혔고, 비슷한 방법으로 화성의 자전주기가 24시간 40분임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카시니는 1669년 프랑스 국왕의 초청으로 파리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1671년 파리천문대 초대 장으로 취임하여 활약하였다. 1675년에는 토성의 고 리에서 이른바 카시니간극(間隙, 토성의 고리 중에서 A고리와 B고리 사이의 폭 수천km의 틈)을 발견하였다. 또한 황도광(黃道光)을 최초로 관측함은 물론, 달의 자전축이 황도면에 수직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달의 칭동(秤動)을 볼 수 있음 을 확인하였다. 카시니는 새로운 이념과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했지만 그의 천문학 활동은 17~18세기의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부터 다양한 기관에 대한 기술과 해박한 지식을 습득하였던 그는 석탄운반용 기관차 ‘블루처’를 개발함으로써 생산된 석탄 운반방식의 획기적인 개선을 하였다. ‘블루처’의 성공이후 1823년 기관차 공장을 설립한 스티븐
슨은 보다 효율적이고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한 증기기관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증기분사’방식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실용적 교통 수단을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1825년 ‘엑티브’호에 이어 1830년 9월 15일 리버풀-맨체스터 구간에 ‘로켓호’를 개통시키며 본격적인 철도운송사업이 시작되었으며 이 후 스티븐슨이 개발한 증기관차는 영국과 유럽, 북아메리카 전역에 철도건설의 박차를 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란 자연을 지배하고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라 보았으며 미국의 주택은 미국의 자연 환경과 미국인들의 생활에 가장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1년부터 1930년대 초까지, 라이트는 이혼과 스캔들, 방화 사건으로 인한 부인과 두 아들의 죽음 등 개 인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건축 활동에 있어서도 다소 침체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일본의 주거 형태에서 발견한 ‘단순함의 미학’을 수용하면서 자연과 융합하는 “데이코쿠 호텔”건축을 통해서 라이트의 건축 철학을 완벽하게 구현하였고, 독창성이 한껏 발휘된 가든 리조트로 불리는 ‘미드웨이 가든’등을 발 표하였다. 그 후, “낙수장(Falling water)”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조셉 카우프만 저택(1936)을 비롯하여, “프라이스 타워, (1956)”, “유니테리언 교회, (1946)” 등 탁월한 건축물들을 선보였으며, [탤리에신 펠로우십]을 조성하여 종합적이고 실제적인 건축 교육에도 힘썼다. ![]()
0세 때 일어난 궁중혁명으로 크렘린에서 쫓겨나 정규 교육이라고는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여 당시 러시아에 주류하던 외국인들로부터 포술과 조선술 등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워 익혔고 1689년 권력다툼에서 승리하여 제위에 오른 후에는 외국 기술자들을 적극 등용하여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힘쓰는 한편 국내의 장인들을 모아 강력한 함대를 구성하는 등 군비증강에 힘썼다. 독창적이고 명민한 지성을 소유한 표트
르 1세는 용기 있고 근면하여 제위기간동안 러시아의 전반적인 이익 과 그 자신의 특별한 계획을 일관성 있게 지탱하기 위해 복잡하게 변화하는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한 인물로써 평가된다. ![]()
얼마 후 빈센트 반 고흐와의 만남이 시작되고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으나, 1888년 12월 어느 날 고흐는 고갱과 다툰 뒤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잘라 버렸다.
적 혼란 속에서 문명에 대한 혐오감을 견디지 못하고 1891년 타히티행 배에 홀로 올랐다. 만, 더욱 중요한 점은 그가 타히티에서 인류 미술사에 길이 남는 걸작들을 창조해 냈다는 사실이다. 다. 고갱 그림의 생명력은 태양의 세례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
터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883까지 망명생활을 하였다. 귀국 후 중단되었던 ‘인민의 외침 (Le Cri du peuple)’을 다시 간행하였으며 자전적 소설 ‘자크 뱅트라(Jacques Vingtras)’라와 ‘소년 (L’Enfant, 1879)’, ‘대학입학자격자(Le Bachelier, 1881)’ 등의 대표작을 통해 동시대 사회적 문제점 등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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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피아노 및 음악이론을 배우고 독학으로 작곡 연구도 하였다. 참신한 필치로 음악평론도 쓰기 시작하여 쇼팽 등의 새로운 음악가를 소개하였다. 1832년 오른손 넷째 손가락을 다치자 피아니스트가 될 꿈을 단념하고, 이때부터 작곡과
평론만을 지향하여 “나비”,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에 의한 연습곡” 등의 피아노곡을 작곡하였으며, “음악신보, Neue Zeitschrift fur M usik”를 발행하여 낭만주의의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슈만의 작품은 고전파 작곡가처럼 모든 분야에 걸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질적으 로 가장 뛰어나고 작품수가 많은 것은 피아노독주곡과 가곡이다. ![]()
아에 건너가 공부를 계속하였다. 1860년 정부의 지시로 6개월간 종군화가로 지내며 경험한 모로코에서의 생활은 포르투니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스페인과 모로코의 전쟁을 그리며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와 강렬한 색채의 매력에 반해버린 포르투니는 이후 현장감 있고 생동감 넘치는 화풍의 대작을 많이 남겼다. 생애의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내며 파리의 미술상을 통해 그림을 팔아 많은 부와 함께 유명인사로서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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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지내게 된다.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일가는 1944년 게슈타포에 발각되어 유태인 강제수용소로 보내졌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체력이 쇄약해진 안네와 그의 언니는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그의 친구들이 보관해온 안네 일가의 유품들을 돌려받아 그중 자신의 딸이 써놓은 기록을 정리해 1947년
‘어린 소녀의 일기(Het Achterhuis)’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암스테르담의 은둔지에서 보낸 2년간의 생활을, 사춘기소녀의 시각과 감성을 더해 활달한 필치로 묘사된 이 기록은 훗날 ‘안네의 일기’로 알려지며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 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녀와 가족이 숨어 지내던 은둔지는 현재 ‘안네 프랑크 재단’에서 보존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적십자는 1945년 3월 31일을 그녀의 공식적인 사망일로 지정하였다. 2004년 10월 3일, 네덜란드의 사법당국은 독일로부터 망명과 동시에 무국적으로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네덜란드 시민권을 주어야 한다는 요청에 대하여 사후의 시민권 부여는 불가능하다는 발표를 하였다. ![]()
의 길로 접어든 쿠르베는 렘브란트의 화풍, 베네치아 그리고 에스파냐 화풍을 바탕으로 점차 자신의 색을 내기 시작하였다. 1844년 살롱전에서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쿠르베는 자신의 고유한 화풍인 사실주의 색채를 띤 그림을 발표하
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중한 스케일의 너무나도 사실적인 그의 그림들은 화단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급기야 쿠르베는 스스로 ‘사실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을 주장하며 당시의 주류였던 고전주의풍의 이상화나 낭만주의적인 공상표현을 배격하였다. 이러한 쿠르베의 사실주의적 화풍 은 미술사적 관점에서 사물에 대한 정확한 관찰에서 비롯되는 사실적 표현기법의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두었다. 그 무렵 빈 분리파를 이끌던 ‘오스트리아 화가 연맹’의 클림트와 만남은 실레를 새로운 영감의 세계로 이끌었다. 실레의 천재성을 파악한 클림트는 아낌없는 충고와 찬사를 그에게 보냈다. 그러나 클림트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실레였지만 그가 남긴 많은 작품들은 클림트의 절제된 경계를 넘어 금단의 영역까지 밀고나가는 파격적이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표현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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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등장하는 사고뭉치 아이의 이름이다. 1844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3 살짜리 아이에게 선물할만한 책을 찾지 못한 그는 자신이 직접 빈 노트에 글과 그림을 그려 넣어 선물을 하게 되었고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판하게 된 것이다. ‘3~6세 어린이들을 위한 예쁘게 칠해
진 그림 15장(1845)’이라는 제목을 달고서 출판된 이 책은 10가지의 짧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마다 용모가 단정하지 못한 아 이, 난폭한 아이, 친구를 놀리는 아이 등 남에게 지적 받을 만한 문제아들이 등장해 나쁜 행동 때문에 벌 받는 인과응보의 교훈을 줌으로 써 아이들이 자신의 나쁜 습관들을 재미있는 동화책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
자극을 받아 증기기관을 대신할 수 있는 동력원의 연구를 시작하였다. 1961년 독자적인 가솔린기관의 개발에 성공한 오토는 1867년 독일의 실업가 ‘오이젠 랑겐’과 동업으로 파리 만국박람회에 개량된 가솔린기관을 출품해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으며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 이
후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1876년 1회의 폭발에 대해 피스톤 행정이 4 번인 4행정 내연기관인 “오토사이클”을 발표하여 당시 산업의 원동 력이었던 증기기관을 대치하는 원동기시대를 개막하였다. ![]()
중레포츠 등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비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스쿠바로 잘 알려진 이 장비의 발명가는 프랑스의 해양 학자이자 영화제작자인 쿠스토(Jacques-Yves Cousteau, 1910.6.11~1997)라는 사람이다.
해군 소위시절 불의의 사고로 비행기조종사의 꿈을 접은 그는 회복기간 동안 새로운 잠수법을 고안해 내었고 더 나아가 이 잠수용 수중호흡기를 고안해 내기에 이르렀다. 이밖에도 해저탐사용 잠수정, 수중카메라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수중 장비들을 개발했으며 해양학자들과 함께 홍해를 비롯한 세계각지 의 해양을 탐사활동을 벌였다. 체계적인 해양탐사 연구 활동을 위한 해양단체의 조직과 더불어 많은 연구기구의 설립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수중촬영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많은 연구를 진행시켰다. 프레데리크 뒤마와 함께 쓴 ‘고요한 세계(Le Monde du silence,1952)’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1956년 칸국 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1957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카메라와 수중 촬영술을 발달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1956년 해군에서 전역 후 모나코 해양박물관장을 거쳐 바다의 환경을 보존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비영리 환경단체인 쿠스토협회를 설립했다. ![]()
장의 필름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들어있는 상자 모양의 작은 사진기를 고안해 내었다. 당시 시판중인 카메라들이 있었지만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아 대중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때를 맞춰 ‘단추를 누르세요, 뒷일은 저희들이 맡겠습니다.’라는 선전 문구와 함께 간단히 손으로 쥐고 촬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100
장의 필름이 장착된 휴대용 카메라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명품이었고 단숨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초기 제품은 장착된 모든 필름의 촬영이 끝나면 카메라체로 공장에 보내져 현상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성능개선 과 함께 새로운 필름과 상품의 개발로 이어져 이스트먼에게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1927년에 이르러 이스트먼코닥사는 미국의 사진업계를 사실상 독점하였고 오늘날 까지도 이 분야에서 미국 최대의 기업 중 하나로 손꼽히며 사진 의 역사를 장식하고 있다. 이스트먼은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한 경영주였고 코닥사의 성공으로 얻은 막대한 부의 대부분을 대학에 기부한 미국의 대표적인 자선가로서 기억되고 있다. ![]()
시기였으나 파슨스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선박의 추진방식 등에 이용되며 다양한 방면에서 본격적인 실용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피스톤의 왕복운동으로 에너지를 얻는 증기기관과는 달리 회전운동만으로 장시간 연속운전이 가능한 증기터빈의 실용화는 선박의 추진방식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으며 오늘날 대출력을 요구하는 발전소, 공장 등의 원동기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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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으며 의인들을 값없이 선택하고 그들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기로 예정한 하느님의 자율은 초월적인 원리라고 주장했다. 을 만나는 데 필요한 완전한 사랑을 얻으려면 선한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으며, 더 나아가 세례를 받지 않고 죽는 유아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여 '유아 고문자'라는 별 명을 얻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최초의 여성 평화주의자
[노벨 생리학·의학상] 벨기에의 세균학자 보르데
[노벨 물리학상] X-선 산란에 대한 연구, 영국 물리학자 바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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