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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광통신 날짜도장으로 보는 조선왕릉
등록일 2016. 2. 23.
첨부파일 up201602231436512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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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통신 날짜도장으로 보는 조선왕릉

우리나라의 옛 도읍지에는 왕릉이 많다. 조선 시대 왕족의 무덤은 왕실의 위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분류된다. 능은 추존왕과 추존왕비를 포함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부모)의 무덤을 말한다. 묘는 왕족 중 대군, 공주, 군, 옹주, 후궁, 귀인 등의 무덤을 일컫는다. 조선 시대(1932~1910, 519년)에는 27대 왕과 왕비 및 추존왕(5명)과 왕비가 있는데, 이 왕족의 무덤을 조선왕릉이라고 한다. 조선 왕조의 무덤은 왕릉 42기, 원 13기, 묘 64기 등 총 119기가 있다.

관광통신 날짜도장으로 보는 조선왕릉

조선 왕릉은 궁궐에서 출발한 임금의 참배 행렬이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기준 삼아 도읍지의 4대문 10리 밖, 80리 안에 조성하였다.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 강원도 영월의 장릉, 경기도 여주의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5기를 제외하고는 궁궐을 중심으로 한양 외곽의 동남쪽과 서북쪽에 주로 모여 있다.

조선 왕릉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자연친화적으로 조성되었다. 또한, 500년 이상 지속하여 오면서 당대의 사상과 정치사, 예술관이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공간 구성과 건축물, 석물 등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독창성이 뛰어나다. 이와 함께 조선왕조가 막을 내린 이후에도 왕실의 후손이 제례를 이어오며 조선 왕조의 무형적인 문화전통을 계승해오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유네스코는 남한에 있는 40기의 조선왕릉을 2009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북한 개성에 있는 후릉과 제릉은 제외). 왕이라고 해서 모두 왕릉에 묻히는 것은 아니다. 종묘에 신주를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는 왕릉에 들어갈 수 없다. 제10대왕 연산군과 제15대왕 광해군은 종묘에 신주가 없고, 왕릉이 아닌 묘에 잠들어 있다.

조선 왕릉 중 관광인 소재로 채택된 것은 구리 건원릉(동구릉), 고양 서오릉, 영월 장릉, 김포 장릉, 남양주(진접) 광릉, 남양주(금곡) 홍릉과 유릉, 남양주(진건) 사릉 등이다<그림 1>. 가장 먼저 관광인 인영에 나타난 것은 16살에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 단종이 묻힌 장릉으로 1962년에 제작되었다. 장릉은 다른 왕릉과는 달리 궁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강원도 영월에 있다. 죽은 후 240년이 지나서 단종이란 묘호와 장릉이란 능호를 얻게 되었다. 처음 제작된 장릉 관광인은 유배지인 청령포와 나무숲에 가린 장릉을 디자인하였다<그림 1>. 비운의 임금인 단종의 장릉을 찾아오는 방문객은 어느 왕릉보다 많다.

두 번째로 등장한 조선왕릉 관광인은 위대한 성군이 묻힌 여주 영릉으로 1974년에 제작되었다. 세계 최고의 과학적인 문자인 훈민정음(한글)을 만들고, 문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제4대 임금 세종과 소헌왕후가 사이좋게 한 무덤에 잠들어 있다<그림 2>. 관광인의 인영은 영릉과 더불어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을 디자인하였다<그림 1>. 영릉은 원래 소헌왕후가 죽자 헌릉(서울 내곡동) 서쪽에 조성하였으나, 4년 후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함께 잠든 후 146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영릉이 위치한 여주는 80리가 넘었지만, 기존의 영릉 자리가 불길하고, 뱃길을 이용하면 하루에 충분히 갈 수 있다는 주장에 지금의 영릉이 조성되면서 합장릉이 되었다.

관광통신 날짜도장으로 보는 조선왕릉

조선왕릉을 대표하는 곳은 서울의 동쪽인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이다.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면서 처음 조성되었다. 태조가 묻힌 건원릉을 중심으로 여러 왕과 왕비들이 묻히면서 현재 동구릉에는 17위의 시신이 묻혀있어, 조선왕릉의 무덤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태조 이성계가 묻힐 당시에는 동구릉이 아니라 건원릉으로 불렸다. 이후 문종과 선조, 장렬왕후, 현종이 묻히면서 동오릉으로 불렸고, 단의왕후와 영조의 능이 만들어지면서 동칠릉으로 불렸으며, 헌종과 문조(효명 세자가 나중에 얻은 칭호)가 안장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동구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건원릉은 다른 후대 왕릉과 다른 큰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봉분에 다른 왕릉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를 심은 것이다<그림 3>. 이는 고향을 그리워했던 아버지를 위해 태종이 태조의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관광통신 날짜도장으로 보는 조선왕릉

동구릉 동쪽 남양주시 금곡동에는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가 함께 잠들어 있는 홍릉과 마지막 왕인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계비 순정효황후가 묻힌 유릉이 있다. 500년 이상 이어 온 조선 왕조의 종지부를 찍은 홍릉과 유릉을 함께 ‘홍·유릉’이라고 부른다. 일본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명성황후는 동구릉 인근 홍릉에 묻힌 후 청량리 지역으로 옮겨졌다가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1919년에 현재 위치에 안장되었다. 홍릉 옆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과 원비 순명효황후, 계비 순정효황후가 함께 묻힌 3인 합장릉인 유릉이 있다. 홍·유릉 관광인의 인영은 처음에는 2개의 왕릉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였으나 나중에 2개의 능으로 디자인이 변경되었다<그림 1>.

남양주 진접읍에는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이 있다. 광릉 관광인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왕릉이 디자인되었으나 중간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인영(광릉수목원?)으로 변경되었다가 나중에 왕릉과 정자각으로 바뀌었다<그림 1>. 남양주 진건읍에는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가 묻힌 사릉이 있다. 사릉 관광인은 단출하고 소박한 사릉을 표현한 것 같다<그림 1>.

궁궐 동쪽에 동구릉이 있다면 서쪽 고양시에는 서오릉과 서삼릉이 있다. 서오릉에 처음으로 생긴 능은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훗날 제7대 덕종으로 추존)가 묻힌 경릉이다. 동쪽에는 제19대 숙종과 첫 번째 계비 인현왕후와 두 번째 계비 인원왕후가 묻힌 명릉이 있다. 그 외에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가 묻혀 있는 홍릉, 예종과 안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창릉,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가 묻혀 있는 익릉, 명종의 아들 순회 세자와 세자빈이 묻혀 있는 순창원,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가 묻힌 대빈묘 등이 있다. 서오릉 근처에는 인종과 인성왕후가 잠들어 있는 효릉,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희릉, 철종과 철인왕후의 예릉이 있는 서삼릉이 있다. 서오릉 관광인을 보면 5개의 왕릉 중 어느 왕릉인지 알 수 없다<그림 1>. 왕릉은 그 형태만 보아서는 구분이 어렵고, 날짜도장으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의 한계도 있다. 동구릉의 건원릉 관광인은 구체적인 명칭이 표기되어 문제의 소지가 없다. 서오릉 관광인은 다섯 개의 왕릉 중 특징이 있는 하나를 정하여 그 이름으로 디자인하면 좋을 것 같다.

영월에 장릉이 있지만, 김포에도 장릉이 있다. 김포 장릉은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의 무덤이다. 김포 장릉 관광인은 쌍릉의 형태가 잘 표현되어 있다<그림 1>.

왕릉은 크기와 위치,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 왕릉의 형태는 단릉, 쌍릉, 합장릉, 동원상하릉, 동원이강릉, 삼연릉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단종의 장릉, 정순왕후의 사릉 등이 단릉에 해당한다. 원종과 인원왕후와 묻힌 김포 장릉, 태종과 원경왕후의 헌릉, 인종과 인성왕후가 잠들어 있는 효릉 등이 쌍릉이다. 합장릉이란 왕과 왕후가 하나의 무덤에 함께 묻힌 능으로 최초의 합장릉은 세종과 소헌왕후가 묻힌 여주 영릉이고,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 및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가 묻힌 유릉도 합장릉이다. 계곡이나 언덕을 사이에 두고 왕과 왕후, 계비의 무덤이 있는 동원이강으로 조성된 것은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과 선조와 의인왕후, 계비인 인목왕후의 목릉이 있다. 한 곳에 3기의 능이 있는 삼연릉은 헌종과 효현왕후, 계비인 효정왕후가 함께 잠들어 있는 동구릉의 경릉이 유일하다. 앞으로 관광인이 정비될 때 이와 같은 특징을 살려 디자인하면 좋을 것 같다.

능역의 공간은 속세의 공간인 진입공간(재실, 연못, 금천교), 제향공간(홍살문, 정자각, 수복방), 성역공간(비각, 능침공간)의 3단계로 구분되어 조성되었다. 능 입구에는 제례를 준비하는 재실이 있고, 재실을 지나 숲길을 따라가면 물길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만나며, 능역을 상징하는 홍살문을 통과하면 능역의 중심부로 접어들게 된다. 봉분 앞에는 다양한 석물과 문·무석인 등이 있다. 관광인 속에 나타난 조선왕릉은 대부분 봉분을 중심으로 장명등과 혼유석을 디자인하였으며, 간혹 정자각, 비각, 홍살문, 문·무인석, 곡장, 석호, 석양, 석마, 망주석 등의 일부가 포함될 수도 있다<그림 1>. 앞으로 왕릉에 따른 구조물 등의 특징을 살려 디자인되길 희망한다.

2009년 12월 서울 태릉 안에 개관한 조선왕릉 전시관은 왕의 국장 절차와 조선왕릉의 역사, 왕릉의 조성과정 및 관리 등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으므로 한 번 방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 월간 우표 2014년 9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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